내 마음대로!
아이가 한국에 왔을 때 깜짝 놀랐다. 예전보다 살이 올라 있었고 내 옷은 맞지도 않았다. 나는 곧장 살 빼라는 잔소리를 시작했다. 아이는 "아니야, 나 호주 가면 마른 편이야." 하길래 "웃기고 있네!" 하며 계속 살 빼기를 종용했다. 한국에서 우리 아이는 통통과에 속했고 키도 커서 한 덩치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호주에 가서 여름이라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아이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살짝 마른 편인 나는 호주에서 진짜 별 볼 일 없는 빼빼 마른 인간이었다. 먹을 게 없어 굶은 사람같이 많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아이는 호주에서 보기 좋은 마른 듯한 몸매를 갖고 있었고 예뻐 보였다. 뭐지? 왜 이리 보이는 거지?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볼 때마다 눈 둘 곳이 없다. 쫙 붙는 레깅스를 평상복처럼 입는 사람들을 나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시티에 나가느라 트레인을 타도 레깅스를 입거나 크롭티를 입은 사람, 브래지어만 입은 것 같은 사람, 똥꼬에 치마가 붙어있는 사람 등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거기에 계절을 초월해 옷을 입었다. 두꺼운 스웨터를 입은 사람과 브래지어만 입은 사람이 동시에 있고, 반바지를 입은 사람과 패딩을 입은 사람이 한 공간에 있었다. 대체로 온몸에 가지가지로 문신한 사람들이 많았고 각자의 멋대로 입고 있어 우리나라처럼 유행하는 패션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거기다 나처럼 기웃거리며 다른 이를 바라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걸 깨닫는 순간, 나는 부끄럽기도 했고 내가 왜 다른 이를 바라보고 관찰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도 했다. 우리나라는, 우리 사회는 남에게 참 관심이 많다. 다시 말하면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 남에 대해서는 말하기 좋아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관심이 있으니 정이 많아 잘 돕고 곁을 내주어 따스한 분위기를 만든다. 다만 그게 어려운 사람이나 요즘 분위기에서는 부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호주에서는 내가 무얼 하든지 내게 관심이 없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인종이 매우 다양하니 옷차림도 다르고 각자의 문화도 다르고 먹거리도 다르고 사는 방법도 다르다. 그러니 각자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는 무언가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한국에서는 입지 않는 미니스커트를 입는다. 한국이었다면 "야, 왜 이리 짧은 걸 입어? 남사스럽게!"라고 이야기할 만한 옷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호주에서 보니 짧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심지어 예뻐 보이는 건 도대체가 설명이 안된다. 나 또한 이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쇼트팬츠에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진짜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리 입고 다닌다는 동질감!
해변에 80킬로가 넘을 것 같은 여자분이 비키니를 입고 자유롭게 다니고, 걷기도 힘들 정도로 나이가 드신 할머니가 오프숄더 긴 드레스를 입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웃통을 벗고 뛰는 많은 운동하는 남자들, 아침 브런치에 노랑과 연두가 섞인 재킷을 걸치고 티타임을 하는 80살 이상 된 어르신,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든 내 눈에 낯선 사람들. 그들은 낯설지만 참 아름다워 보였다.
'아름답다'의 어원은 '나답다'는 뜻이다. 호주는 분명 아름다운 곳이다. 각자가 참으로 자기 다운 삶을 살고 있어 보였다. 겉치레나 허식에 허비하는 우리네 삶과 사뭇 다름을 느끼며, 나 또한 어느새 젖어 들어 낯선 곳에서도 한국의 향기를 내뿜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 그런데 그러려면 내 마음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 올해는 내 마음이 뭔지부터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