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추운 건 봄의 탓이 아니다

by 영자의 전성시대

한 남자아이가 있다. 나는 그 녀석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보통 모든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편인데 이 녀석은 종종 머리를 굴리며 못된 짓을 한다. 가만있는 친구를 들썩이게 만들어서 무언가를 행동하게 하거나 말하게 하는데 교사의 눈에 띄어 혼나기라도 하면 자기는 마치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한다. 친구가 혼나도 표정변화도 없고 미안한 기색은 더더욱 없다.


처음부터 관찰하지 않으면 이 아이는 눈에 띄지 않고 심지어 아주 좋은 학습태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잘 보아야 보이고 잘 관찰해야 아이의 속내를 알 수 있다. 나는 이게 잘 보이고, 이미 알고 있다는 내 눈빛을 아이는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는 나를 좀 무서워한다. 아이들 뒤에 숨어있으려는 자신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 무섭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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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다. 영하의 추위를 견디다 호주의 여름을 보내고 돌아오니 봄의 따뜻함이 몹시 반갑다. 봄이라고 패딩점퍼를 장 속에 넣어두고 조금 얇아진 옷을 입고 외출했다. 이게 웬일인가! 봄바람에 날아가는 줄 알았다. 아마 내가 가발이라도 쓰고 있었더라면 가발도 날아갈 만큼의 봄바람으로 몸이 오들오들 한기가 스몄다. 손도 시려 주머니에 넣어 조금이라도 따뜻해보려 했다.


"에잇, 이게 무슨 봄이냐? 겨울보다 더 춥구먼. 겨울에는 한기는 안 드는데 오히려 지금은 몸살 날 것 같아." 나는 투덜거리며 봄의 추위에 한껏 짜증이 났다. 단순히 "앗, 추워!"가 아닌 뼛속 깊이 스멀스멀 밀려와 추위에 잠식당하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 서슬 퍼런 추위의 창이 나를 찌르려 달려들기 전의 싸함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매년 초봄이면 감기몸살 환자들이 급증하는 이유 아닐까?


계절은 봄이라고 두꺼운 패딩을 입고 나가는 건 오버고 따뜻한 스웨터를 입고 스카프를 하고 나가 기분전환을 하려 하지만 스웨터 구멍 사이사이를 기가 막히게 찾아 봄바람이 기어들어와 내 살을 추위로 오들오들 떨게 만든다. 스카프와 옷사이의 빈틈을 찾아 봄바람은 차가움을 내 목구멍 속으로 기어코 집어넣어 목이 부어 오한에 떨게 만들기도 하고 몸살로 결국 몸져눕게 한다. 나를 아프게 만드는 봄은 지긋지긋하다.




가만가만! 생각해 보자. 봄은 잘못하지 않았다. 봄은 자기가 등장해야 할 때를 알고 나타났을 뿐이다. 사실은 봄의 뒤에 숨어서 마치 봄인양 행세하는 바람이란 놈이 나쁜 거다. 이름도 봄바람이라 칭하며 봄의 탓인 양 머리를 굴리는 바람이 이 추위의 진짜 가해자인 것이다. 아하,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처럼 겉으로 보이는 소유의 모습이 아닌 개체로서의 본연의 존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정신산란하게 떠도는 모래바람이 걷히고 나면 가만히 자기 자리에서 요동치 않고 있었던 진짜 모습이 보인다. 마치 지금 상황이나 문제로 인한 감정에 휘둘리는 내가 진짜인 것처럼 보이나 가만히 내려앉으면 진짜 나는 그런 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는 하찮은 문제덩어리가 아니고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감정봉지가 아니다. 그것들이 나를 잠시는 움직일 수 있으나 나는 언제나 여기에 그대로 뿌리내려 존재하고 있다.


봄은 결코 봄바람이 아니다. 바람이 잠시 봄을 흔들어 같아 보이게는 만들지만 결국 이 둘은 다른 것임을 우린 안다. 봄아, 미안하다. 여태 네가 잘못인 줄 알고 네 탓만 했으니 너도 참 억울했겠다. 바람아, 나는 네가 매년 봄마다 한일을 알고 있다. 숨지 말고 봄인양 척하지 말고 너를 드러내기를, 봄에 바람이 분다고 나쁜 짓은 아니니 용기 있게 너의 일을 보이렴. 나 또한 내 모습으로 용기 내어 살아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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