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고만하다.

나의 사유 에세이 12

by 영자의 전성시대

지인들 여럿이 모임을 했다. 워낙 오래된 사이들이라 과거에는 집의 대소사까지 알 정도의 관계였다. 아쉽지만 지금은 좀 소원해진 사이가 되었다.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속 깊은 대화들이 오갔고, 적잖이 나이가 든 우리들은 확실히 예전과는 달랐다. 그때는 사는 게 힘들어서 만나기만 하면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몇 시간을 함께 울며 비워낸 마음으로 집으로 가서 다시 씩씩하게 살아냈다. 그렇게 10여 년을 함께 살아낸 전우였다.


워낙 오랜만이라 서먹할 수도 있었지만 관계적 감정이란 내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마치 자전거를 한번 배우면 아무리 오랫동안 안 타더라도 몸이 기억해 탈 수 있는 것처럼 이런 관계 또한 잊힐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마치 아주 오랜만에 만난 사이지만 어제 만났다 헤어진 관계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그랬는지 우리는 오래전 그때처럼 가림 없이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자녀 이야기, 부모 이야기, 배우자 이야기 등등 남에게 하기 힘든 깊은 속내를 드러내며 한참을 대화하다 보니, 예전 그때와는 사뭇 다른 우리들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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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고 울던 어른의 모습의 어린이들이 이제는 진짜 어른이 되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던 상처받은 나를 놓아주고 있었다. 상황이나 사람이 나를 공격하게 만들고 그것을 상처로 깊이 묻어두는 선택을 이제는 하지 않는다. 왜곡하고 곡해하던 것들을 잠시 텀을 두어 생각할 시간을 갖고 제대로 바라보고 진짜 문제를 찾아 해결하려 하는 지혜도 조금은 생겼다. 남을 미워하는 어려운 시간은 버리고 이해하기로 하는 쉬운 선택을 하고, 앞을 보기보다는 눈을 들어 멀리 보려고, 눈으로 보기 전에 마음으로 느끼는 것을 믿어보기로 하는 우리들이 보였다.


지지고 볶고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하는 정리하는 내 한마디, “다 고만고만하게 사네.”

저 지나가는 저이도 우리랑 똑같을걸, 물어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이 고만고만하게 살고 있는 당신들과 지나가는 저이가 있어 고만한 아픔을 가진 나는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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