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와 햄릿, 그 사이 어딘가

나의 사유 에세이 11

by 영자의 전성시대

예전에 문소영 작가의 <명화 독서>라는 책으로 독회모임을 했었다. 그 책에서 돈키호테와 햄릿을 소개했는데 토의하며 우리는 극명히 다른 두 주인공의 성품에 대해 비교했다.


모든 불의와 비합리를 용납하지 못하는, 엉덩이도 가벼운 돈키호테. 그가 나타나면 일이 해결되기보다는 꼬이기 시작한다. 시끄럽고 요란한 사람, 그러나 정작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은 돈키호테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자신을 공감해주고 뭐라도 해주려 노력하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적어도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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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조용하게 계획적으로 모든 상황을 파악하는 햄릿, 알지만 알은체도 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그, 감정의 동요가 적고 사람들의 행동의 인과관계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사려심이 깊다. 다만 그는 엉덩이가 무겁다. 결단한 것을 실행하는 능력이 부족하달까? 우유부단하게 느껴질 만큼 생각만 한다. 옆에 붙어있지만 결정적인 데서 옆에 있는 사람의 울화통을 터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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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분석하며 자연스레 나의 성향에 대해서도, 나의 변화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예전의 나는 돈키호테 저리 가라였다. 내 기준의 불의를 보면 직설적인 화법으로 무찌르거나 속으로 못 견뎌했다. 그러다 보니 감정 기복도 심하고 다툼도 있었다. 하지만 뒤끝도 없고 험담도 하지 않는 혼자만 깔끔한(?) 성격이었다. 적어도 내 속내를 다 드러내어 투명한 삶을 살았다.


지금은 어떤가? 머리가 터질 만큼 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차, 몇 년을 두통과 불면증으로 괴로워했다. 일이 생기면 흥분하기보다는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분석과 요약을 통해 내가 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등을 분류하고 그대로 실행한다. 가끔은 너무 차분하고 냉정한 나를 보며 슬프기도 하다. 사람을 보더라도 한 뼘의 거리를 유지하고 아주 ‘나이스’한 관계를 유지한다. 내 속내가 절대 보이지 않게, 하지만 거짓은 아니게 회색빛 블라인드를 치고 산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다. 살기 위해 그때 최선의 선택들이 모여 지금이 되었으니 후회도 없다. 다만, 가끔은 서글픈 것은 그때의 호기로움과 순수함과 투명함이 그리울 뿐, 그래도 지금 나는 성숙하는 중이라고 우기고 싶다.


지금 나는 돈키호테와 햄릿의 그 사이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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