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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가 어른이 되기를, 그래서 나의 곁을 떠나기를 꿈꾸며 키웠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내 손은 아이들을 위해 존재할 뿐, 나를 위해 손을 쓴 기억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성장한 후, 내 머리와 마음은 아이들의 교육과 양육을 위해 생각이 가득 차고 넘쳐 내 삶을 위한 꿈을 꾸기란 쉽지 않았다. 모든 우선순위가 아이들이고 모든 선택의 기준이 아이였다. 내 삶을 위해서, 눈을 감고 뜨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있기를 그래서 나와 분리되기를 꿈꾸며 참고 참고 참았다.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캔디가 되어갔다.
아이들이 성장하여 공식적으로 성인이 된 그날, 나는 나의 어깨에 조그마한 작은 날개를 달았다. 드디어 내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 일하다가도 때꺼리로 인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그리고 교육적으로서의 엄마의 역할을 벗어났다는 진정한 자유로움이 나를 매일매일 훨훨 날게 했고 이 기분은 꽤 오래 꿀잠을 자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금만 더 버티면 아이들과 나는 독립적인 존재로서 각각의 삶을 살 거라는 기대로 흐뭇했다.
큰아이가 학교에서 주최하는 인턴십에 합격하여 외국으로 급히 가게 되었다. 예정에 없던 일이라 한 달 상간에 서류심사와 2차 면접, 3차 기업 인터뷰까지 진행되었고 2주 반 만에 갈 준비를 마쳤다. 정신이 혼미할 만큼 폭풍 같은 시간이 흘렀고, 어느 새벽에 일어나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에 비로소 아이와 이별해야 하는 것에 대해 작은 충격을 느꼈다.
분명 아주 좋은 일이고 매우 감사할 일인데, 그리고 너무나 바랬던 바람이었음에도 이 작은 이별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작은 아이까지 주말 인턴에 합격이 되며 함께 할 시간이 거의 없게 되자, 나는 상당히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치 영화 속에서 악당이 주인공을 잡아 바로 죽이면 되는데 주저리 주저리 얘기하며 시간을 끌다 자기가 죽는 이해 안 되는 상황같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독립된 삶의 고지가 바로 앞에 있는데 주춤거리며 충분히 행복해하지 않는 내모습이 이해가 안 된다.
언젠가는 모든 자녀는 부모를 떠나야 한다. 이것은 거리적인 간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녀는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며 자신이 결정하고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권리가 있다. 또한 부모도 20년 정도 부모의 이름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회복하고 노년의 삶을 준비하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서로를 놓지 못하는 것은 서로에게 참으로 못 할 짓을 하는 것이다.
안다. 아는데 마음이 이상하다. 정신은 이성적인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하고 가슴이 울렁거린다. 아이를 떠나보내는 공항 속 이별의 순간이 생각만으로도 공포스럽다. 아무도 울면 안 된다. 한 명이 눈물샘을 터트리면 모두 울 것 같다. 나는 마음으로 준비한다. 아이를 잘 보내주는 것, 진짜 어른처럼 떠나보내 주는 것, 언제든 든든한 품으로 너를 지지하고 있을 것이라 마음으로 품어내며 손 흔들어 주는 것을 말이다.
“아이야,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