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감사함을 배우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by 영자의 전성시대

오랜만에 다시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다. 어릴 때는 수레바퀴 같은 삶을 사는 한스를 보며 나와 같다고, 그리고 인간의 모든 이들이 한스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노라고 겁 없이 생각했다. 결말을 보며 태어난 것이 축복인지, 죽는 것이 축복인지에 대해 어려운 마음으로 숙고했다. 그때는 나도 사는 것이 어려워서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는 것이 축복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같이 살아야 하는 버거움도 없었을 테니까.


교육청 특강으로 중학생 독서교육을 하게 되어 이 책을 선정했다. 그래서 알고 있지만 이 책을 다시 느끼고 싶어 펼쳤다. 늘 그렇듯이 다시 읽을 때의 그 책은 예전의 그 책이 아니다.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이 보이고, 알지 못했던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최애 책인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열 번도 넘게 읽었으나 나는 여전히 꺽꺽거리며 운다. 그런데 우는 장면이 읽을 때마다 바뀐다. 왜냐면 내가 변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다시 이 책을 읽으며 여전히 우유부단하고 생각이 많은 한스와 이 아이에게 많은 기대를 하며 각각 다른 방법으로 도움을 주려고 하는 어른들이 보인다. 그리고 낚시... 한스에게 유일한 선물 같은 낚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따끔따끔하다. ‘이 낚시를 하게만 했어도 이 아이는 살았을 텐데, 조금은 행복했을 텐데’ 하고 말이다.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가슴이 묵직해온다. 결말을 알아서, 젊은 주인공의 복잡한 마음이 느껴져서, 나의 젊은 날이 기억나서,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일 것 같아 심란함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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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제목은 이 책에서 딱 한번 나온다. 성적이 계속 떨어지는 한스에게 신학교 교장은 “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라는 부분인데 아무렇지 않게 한스에게 말하는 대표적인 어른의 모습이 사뭇 소름 돋았다. 수레바퀴 아래 깔리는 모습이 연상돼서인지, 아니면 그때의 내가 수레바퀴 밑에 깔려 신음하고 있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이 대목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은 정도의 공포감을 갖고 읽게 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삶에 최선의 다해 살았던 한스, 그런 한스에게 관심을 갖고 더 성장시키고 싶었던 어른들, 물론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그들 나름은 최선의 조언이었을 것이다. 다르게 보면 한스는 외로울 틈이 없었다. 늘 지지해 주는 아버지와 주위 이웃들, 심지어 교장까지도 관심을 갖는 그런 부러운 아이. 그냥 그런 수레가 한스에게 맞지 않았던 것이고, 다른 수레로 바꿀 용기가 한스에게 없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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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수레바퀴 속 세상에서 내가 어떤 것을 보고 선택하는가는 결국 ‘나’인 것이다. 내가 주체인 수레바퀴라면 살아봄직하고 같은 삶이라도 감사할 제목은 주변에 늘 있다. 우리는 지금의 수레를 만들기까지 수고하고 노력했다. 이 수레 속에 갇혀 있다고 슬퍼할 일이 아니라 이 수레를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 수레가 멈추지 않고 돌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자.


오늘도 멋진 나의 수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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