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먼지 뿌옇던 오후
친구 동명이가 나를 데려갔다
작은 우물이 있는 공터를 지나 골목이
새가 물어온 나뭇가지처럼 얽혀있던
그곳
손바닥만 한 간유리 창엔
황토 얼룩이 마른버짐처럼 피어있었고
집집마다 색색의 빨래가
상여 뒤 만장처럼 걸려 있었다
작은 바람들 흙벽을 타고
담쟁이처럼 올라가다
툭 툭 떨어지던
골타르 칠한 나무 문 그 집 앞
어디선가 마른기침이
사선으로 날아와 낙엽처럼 흩어졌다
어디서도 맡아보지 못한
수상한 냄새들이 발목을 잡기는 했지만
동명이의 익숙한 걸음만 따라갔다
미닫이 문 탁, 닫히는 소리에
작은 심장도 탁, 내려앉았다
세상은 정지화면처럼 멈췄고
움직이는 것은 나와 동명이 뿐이었다
슬픔은 슬픔에서 오는 것이 아나라
익숙하지 못한 두려움에서 오는 것
바다로 창이 난,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는 그 방에서
어떤 낯선 고향의 이야기를 들었다
밭이랑이 끝나는 곳에
감나무가 있다고 했다
무화과나무가 있는 장독대 아래
커다란 두꺼비가 산다고 했다
하루 두 번만 오는
먼지 잔뜩 낀 버스가 서는 정거장에선
엄마가 수수깡처럼 기다릴 거라고 했다
시간에 꽂힌 채
눈물이 났고 엄마가 보고 싶었다
마른 공기를 쓸고 지나가던
딱딱한 태양이
몇 개의 전봇대에 걸려 부스러질 때
서랍 속 비뚤어진 글씨로 써 내려간
일기장을 덮었다
사람들은 슬픔도 아름답게 적곤 한다
그래야 슬픔도 아름다워지니까
달려 내려오던 좁은 비탈길
문가에 서 있던 개 한 마리
우두커니 쳐다보던 그날 오후
이제는 낡은 그림처럼
내 기억의 벽에
무심히 걸려있는 그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