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진호 Nov 25. 2021

그 집

황사 먼지 뿌옇던 오후

친구 동명이가 나를 데려갔다


작은 우물이 있는 공터를 지나 골목이

새가 물어온 나뭇가지처럼 얽혀있던

그곳


손바닥만 한 간유리 창

황토 얼룩이 마른버짐처럼 피어있었

집집마다 색색의 빨래가

상여 뒤 만장처럼 려 있었다


작은 바람들 벽을 타고

담쟁이처럼 올라가다

툭 툭 떨어지

골타르 칠한 나무 그 집 앞


어디선가 마른기침

사선으로 날아와 낙엽처럼 흩어졌다


어디서도 맡아보지 못한

수상한 냄새들이 발목을 잡기는 했지만

동명이익숙한 걸음 따라갔다


미닫이 문 탁, 닫히는 소리에

작은 심장도 탁, 내려앉았다

세상은 정지화면처럼 멈췄고

움직이는 것은 나와 동명이 뿐이었다


슬픔은 슬픔에서 오는 것이 아나라

익숙하지 못한 두려움에서 오는 것


바다로 창이 난,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는 그 방에서

 낯선 고향의 이야기를 들었다


밭이랑이 끝나는 곳에

감나무가 있다고 했다

무화과나무가 있는 장독대 아래

커다란 두꺼비가 산다고 했다


하루 두 번만 오는

먼지 잔뜩 낀 버스가 서는 정거장에선

엄마가 수수깡처럼 기다릴 거라고 했다

에 꽂힌 채


눈물이 났고 엄마가 보고 싶었다


마른 공기를 쓸고 지나가던

딱딱한 태양이

몇 개의 전봇대에 걸려 부스러질 때

서랍 속 비뚤어진 글씨로 써 내려간

일기장을 덮었다


사람들은 슬픔도 아름답게 적곤 한다

그래야 슬픔도 아름다워지니까


달려 내려오던 좁은 비탈길

문가에 서 있던 개 한 마리

우두커니 쳐다보던 그날 오후


이제는 은 그림처럼

내 기억의 벽에

무심히 걸려있는 그 집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