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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진호 Jan 07. 2022

고딕지구 #3

연출된 테마파크

고딕지구 산책의 시작, 노바광장(Plaza Nova)     

     

  아이러니하게도 고딕지구의 매력은 “길을 잃는 것”이다. 무리 준비를 잘했어도 곳에선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무서워하지말자. 을 잃은 탓에 몰랐던 광장을 만날 수 있고, 몰랐던 골목을 만날 수 있고, 몰랐던 시간을 만날 수 있다. 고딕지구에서 길을 잃다는 것은 고딕지구 여행을 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은 "벗어남"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사람과 생각으로부터.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었던 시간에서 빠져나와  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시간이다. 그렇게 찾은 시간, 광장 한쪽에 있는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셔도 좋다. 에스뜨레야(Estrella) 생맥주 한잔, 혹은 무겁지 않은 레드 와인 한잔도 좋다. 낮술이면 어쩌랴. 여기는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인데.


  가방에 넣어온 책은 이럴 때 펼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고,  이런저런 생각을 끄적거릴 수도 있다. 가우디를 만나고 피카소와 미로를 만나는 것이 숙제였다면 여기서는 그런 숙제가 없다. 보이는 것을 보면 될 뿐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닫혀있던 한쪽 문이 열리고 그곳으로 갑작스레 아이들이 몰려나와 뛰어다니는 광장. 그 소리에 후드득거리며 날아가는 새 떼들. 급할 것도 없고 급해서도 안 되는, 잠시의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는 곳이 고딕지구다.      


  고딕지구 산책은 특별한 시작점이 없다. 왜냐하면 고딕지구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포인트가 아니라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에 나를 밀어 넣으면 된다. 그리고는 발길 닫는 데로 바람 부는 데로 다니면 된다.


  하지만 굳이 고딕지구 산책의 시작점을 꼽으라면 대성당 앞에 있는 광장인 노바광장(Plaza de Nova)을 꼽겠다. 바로 앞에 바르셀로나 대성당이 있고, 로마 성벽이 있고 로마 수로교가 있고, 파카소(Picasso)의 그림을 벽화로 만들어놓은 건축가 협회 건물이 있는 곳이다.  


  노바광장의 기원은 중세 때인 135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성 밖의 농민들이 짚단을 가지고 와서 무게를 재서 팔았던 시장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대성당 정면 오른쪽으로 두 개의 낡은 성벽 기둥 그 옛날 로마 도시 바르시노(Barcino)로 들어가는 성문 자리에 서있다. 사람들은 이천 년 전 로마시대의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는데 원래의 것이 아니고 12세기에 복원해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성벽을 통해 이천 년 전 로마 식민 도시 바르시노로 들어가는 성문의 입구를 상상해 볼 수가 있다. 성벽 왼쪽에 붙어있는 반쯤 부서진 유적은 인근에서 발굴한 로마 시대 수로교를 복원해 놓은 것이다.


  성벽 앞쪽의 흰색 건물은 바르셀로나 건축가협회 건물로 1962년에 지어졌다. 피카소의 친구였던 건축가는 건물 외벽을 피카소의 그림으로 장식할 요량으로 피카소에 부탁해서 골판지에 그려진 그림을 얻는다. 그리고 피카소가 추천한 노르웨이 출신 예술가 칼 네 사르(Carl Nesjar)에 의뢰하여 현재의 벽화를 설치했다. 칼 네 사르는 이전에 피카소와 비슷한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노바 광장에서는 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열리는  골동품 시장이 대표적인데 호기심 많은 관광객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크리스마스 장식 용품을 파는 산따 루시아 시장(Fira de Santa Lucia)이 노바광장에서 열린다. 1786년부터 크리스마스 무렵에 열린 이 시장은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겐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나왔던 아이들이 자라 할아버지가 되고, 그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데리고 나오는 시장. 세월은 흘러도 어렸을 때의 설렘은 여전한 곳이다. 여기서 사간 물건들로 집안을 장식하는 그때부터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는 시작된다.       

  노바광장은 고딕지구 산책을 나왔다가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대성당 앞 계단은 마치 기다란 벤치처럼 사람들에게 앉을자리를 내어준다. 계단에 앉아 거리 악사들이 연주하는 감미로운 음악을 듣기도 하고 경찰 눈을 피해 잽싸게 펼치는 제3세계 젊은이들의 텀블링 묘기를 구경하면서 박수를 치기도 한다. 눈부신 햇살이 온전히 내려앉는 광장은 뒤쪽의 어둡고 축축한 골목들과 대비된다.

  일요일 오전에는 까딸루냐 민속춤 사르다나(Sardana) 공연이 열리곤 한다. 사르다나 춤은 광장에 모여 서로가 손을 잡고 둥근 원형을 그리면서 몸을 조금씩 움직이는 춤으로 우리의 강강술래와 유사하다. 사람들은 가지고 온 소지품들을 춤 무리 원형의 중앙에 두고 양옆의 사람의 손을 잡고 춤을 춘다.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이 춤도 나름의 리듬과 규칙이 있다. 춤 무리를 이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인데 나름 멋지게 차려입고 나왔다. 음악은 꼬블라(Cobla)라고 불리는 관현악 밴드가 성당을 등지고 앉아 연주한다.


  까딸루냐의 사르다나 춤은 스페인 중남부의 플라멩꼬와 비교된다. 플라멩꼬가 춤추는 사람의 개인기를 중요시하는 춤이라면 사르다나는 개인보다는 단체를 중요시하는 춤이다. 플라멩꼬가 개인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화해와 반목 등 개인의 변화무쌍한 감정이 직설적으로 표현되는 춤이라면 사르다나는 춤을 이루는 커다란 집단이 중요할 뿐이지 그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 플라멩꼬가 먹구름 낀 하늘이고 파도 몰아치는 바다라면 사르다나는 양털구름 몽골몽골 한 하늘, 미풍에 일렁이는 잔잔한 바다다.

 

  이는 지역적 특성에도 잘 드러난다. 바르셀로나가 있는 까딸루냐는 개인보다는 집단이 더 중요시되고 남부 스페인은 집단보다는 개인이 더 우선시 되는 경향이 있다. 스페인에서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이 까딸루냐라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대성당 앞, 건축가협회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키스의 벽이 나온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모자이크 타일 벽인데 약간 떨어져서 보면 남녀의 달콤한 키스 장면이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 앞 베트남 쌀 국숫집 Bun Bo. 칼칼한 국물이 생각나면 먹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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