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얼마 만인지. 거실에서 빛을 발하며 나를 반기는 크리스마스트리에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분명히 우리 집이 맞는데, 내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는데 아침에 없던 트리가 서 있으니 말이다. 반짝이는 트리로 어둠에 덮여 있던 거실이 화려해 보인다고 느끼는 순간, 남편과 딸애가 얼굴을 내밀었다.
매년 연말이 되면 남편과 딸애는 지극정성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세종시로 이사하면서 15년 동안 쓰던 소나무를 놓고 갈등했는데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것이라 쉬이 버릴 수 없었다.
결국, 큰 소나무와 작은 소나무까지 싸 들고 왔지만, 이사 오자마자 베란다 구석에 넣어두고 잊고 있었다. 그 사이 딸애도 직장인이 되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소나무는 점차 잊혔다.
대청소하던 어느 날 베란다를 치우며 소나무를 꺼내놓았다. 트리에 장식하던 꼬마전구와 앙증맞은 소품도 모두 꺼내어 싸두었다. 한데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남편은 소나무를 다시 있던 자리로 옮겼다.
자칫 쓰레기로 묻힐뻔한 소나무가 멋진 크리스마스트리로 둔갑한 것을 보니 딸애 때문에 강제로 산타에서 명예퇴직하던 때가 떠올랐다.
외동인 딸애는 혼자 자라서인지 영악하지 못했다. 아니, 약지 못하고, 겁도 많고, 어리숙한 아이로 자랐다. 언니나 오빠가 있는 조카들을 보면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에 산타의 실체를 알아버리는데, 딸애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알게 되었다.
딸애는 산타에 대한 환상이 컸다. 어릴 때부터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잠을 설치며 기다렸다. 매년 성탄절 새벽이면 딸애는 살금살금 거실로 걸어 나와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놓여 있는 선물을 가지고 들어간다. 그런 딸애의 모습을 지켜보며 남편과 나는 “올해도 완벽하게 속아 넘어가는군!”이라고 하며 딸애의 좋아하는 얼굴을 보는 것이 기쁨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딸애가 산타에게 바라는 선물도 다양해졌다. 어느 해인가는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심즈2'라는 게임 CD를 구하려고 남편은 서울로 나는 시내 완구점을 다 뒤지고 다니기도 했었다.
해가갈수록 마음이 커지는 딸애가 원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일도 큰일이었다. 남편과 서로 번갈아 가며 딸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선물을 알아놓아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딸애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선물을 사다 놓으니, 딸애는 정말 산타가 있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 같다.
가끔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산타는 없고 엄마, 아빠가 사다 놓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솔직히 말해달라고 조르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남편과 나는 “산타는 너의 마음속에 있다. 네가 산타가 있다고 믿으면, 있는 것이고 친구들처럼 없다고 믿으면, 없는 거야.”라는 말을 해주었다. 남편과 나는 딸애한테 희망과 기쁨을 주는 산타의 실체에 대해서 스스로 알아차릴 때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한데, 딸애가 자라면서 바라는 선물의 단가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핸드폰이 없던 딸애가 그즈음 새로 나온 70만 원 상당하는 카메라 폰을 갖고 싶다고 했다. 비싸니 다른 것으로 준비하자는 나의 만류에도, 남편은 딸애한테 산타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핸드폰을 사왔다.
다음 날 새벽 거실로 나간 딸아이가 기뻐서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꼭 가지고 싶어 하던 선물을 받은 딸애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산타할아버지는 내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것 같다고 했다.
그날 남편과 나는 딸애를 앉혀놓고 이제껏 너한테 선물을 준 산타는 엄마, 아빠였다고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처음엔 놀라며 의아해하던 딸애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사실 커가면서 친구들이 바보라고 놀릴 때마다 의심스럽긴 했었는데, 매년 완벽하게 선물을 주는 산타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날 딸애와 나는 같이 부둥켜안고 한참 울었다.
딸애는 엄마, 아빠가 사주는 선물인 줄 알았으면 이렇게 비싼 휴대전화를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기뻐해야 할 크리스마스 날에 눈물을 쏙 빼고 산타의 실체를 알게 된 딸은 그동안 엄마, 아빠 때문에 너무 감사했고 또 죄송하다고 했다.
요즘도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그날을 떠올리며 웃음꽃을 피운다. 그리고 자기를 완벽하게 16년간이나 속게 해준 엄마 아빠처럼 딸애도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아이들에게 산타 역할을 해주겠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딸애한테 산타의 의미는 그해가 마지막이지 않았나 싶다. 핸드폰 선물을 받으며 우리 부부를 강제로 명퇴시켰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니 남편 말을 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 놓아두면 쓸데가 있다더니 오늘 같은 날을 만들려고 그랬나 보다. 유난히 빛을 발하며 반짝거리는 루돌프 전구를 만져본다. 산타로 현직에 있던 그 시절이 그립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딸애 선물 사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는데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산타가 되어 선물을 사러 다니느라 동분서주하고, 딸애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느라 눈치를 보던 그 시절이 부모로서 가장 행복한 때였지 싶다. <문학수 2025년 12월 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