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박종희

화무십일홍이라더니, 코로나 때 반짝 고개를 들던 껌이 다시 구석으로 밀려났다. 마스크 착용으로 생긴 입냄새를 없애려고, 껌을 찾던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었기 때문이다.


참, 좋은 세상이다. 껌도 기능성을 추가해 무가당 껌, 졸음 방지 껌, 니코틴 껌 등 종류가 다양해졌다. 껌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도 졸음 방지용 껌은 차에 두고 다닌다.


껌은 씹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입냄새를 없애고 텁텁한 입안을 개운하게 하지만, 단물이 쉽게 빠지고 버리는 것이 불편하다. 자칫하다 손에 붙거나 잘못 버려 옷이나 머리에 붙게 되면 낭패를 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잘나고 기세등등하던 사람들도 늙고 병들면 단물 빠진 껌 같은 신세가 된다. 한데, 요즘은 단맛이 빠져 갈 곳이 없어진 껌들을 반기는 곳이 있다. 바로 요양원이다. 요양원은 늙고 병들면서 쓸모 없어지는 어르신들이 머무는 종착지다.


요양원에 가면 좁은 병실의 침대마다 어르신들이 껌처럼 붙어있다. 즐겁게 씹다 단맛이 없어지면 흥미를 잃는 껌처럼 이곳에 계시는 분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단물이 빠진 지 오래되어 그런가. 어느새 새물내는 사라지고 퀴퀴한 냄새만 진동한다.


시어머니도 노인요양병원에 계셨다. 치매로 깜빡깜빡하던 어머니한테 파킨슨병까지 생기면서 집에서 돌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치매가 꽃처럼 왔다. 껌처럼 침대에 달라붙어 종일 손뼉 치고 노래를 부르며 지냈다. 항상 웃으면서 즐겁게 지내니 간호사와 간병인들이 좋아했다.


하나, 그런 어머니한테도 복병은 있었다. 사십 대에 심한 어지럼증과 치주염을 앓으신 어머니는 이가 몽땅 빠졌다. 평소에도 잇몸으로 식사하시던 어머니는 부드럽고 무른 음식만 드셨는데 개인 맞춤식 식단이 어려운 요양원에서는 잘게 다져 섞은 밥이나 죽이 나왔다. 입맛 까다로운 어머니가 반가워할 리 만무였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내가 해다 드리는 음식으로 버티시다가 한 번씩 사람을 힘들게 했다. 이가 없어 오목해진 입술이 다 닳도록 잠시도 쉬지 않고 혀를 돌렸다. 껌을 씹듯 어머니가 혀를 돌리기 시작하면 우리 집은 비상이 걸렸다. 혀를 돌리면서 밥도 밀어내고 음식은 아예 거부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위험한 상황이 닥칠까 봐 두려웠다.


이벤트처럼 자주 그런 일이 생기니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다. 조짐이 보이면 짜장면, 칼국수, 잡채 등 어머니가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을 준비해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요양원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음식 중 한 가지라도 어머니의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 있으면 그날은 성공하는 것이다. 그렇게 절절매며 어머니께 단맛을 찾아드릴 때면 아직도 당신이 건재함을 확인시키는 것 같아 안심이 됐다.


요양원에 가면 세상과 단절된 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은 모두 비슷한 모습의 어르신들과 하얀 옷을 입은 의료진들뿐이다. 가끔 얼굴을 비치는 보호자도 있지만,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세상에서 역할이 없어진 어르신들은 종일 병실에서 창가로 쏟아지는 햇살을 지킨다. 햇살에서 쏟아지는 줄기를 쫓느라 몸도 기울어진다. 그들이 이곳에서 달리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낯선 행성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요양원에 부려지면, 그날부터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과 눈 맞추고 살아가느라 얼마나 마음을 다잡아야 할까. 불쑥불쑥 일어서는 마음을 누르느라 가슴벽이 무너졌을 것 같다.


어머니 병실에는 여섯 명의 어르신이 계셨다. 대부분 생의 마지막 구간을 걷는 분들이라 온몸에 링거줄을 매달거나 치매로 당신을 잊고 지냈다. 껌에도 각기 다른 맛과 향기가 있듯이 그분들도 젊었을 때는 저마다의 색깔과 향기가 있었을 게다.


어머니 맞은편 침대에 계시는 어르신은 공무원으로 정년을 마친 분이다. 바람에 펄럭이듯 기억은 들쑥날쑥하지만, 몸에 밴 듯 겸손하고 단정한 모습에서 어르신의 과거가 읽혔다. 어르신은 유독 약에 집착했다. 무슨 약이든 눈에 보이는 대로 먹어 치우는데 금방 먹고 돌아서도 약을 찾느라 이불을 헤집었다. 어르신은 약을 먹어야만 당신의 기억을 붙잡을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


사건 없는 역사는 없다고, 20여 년 전, 큰아들을 앞세운 뒤 화분처럼 앉아계시던 어머니한테도 손님이 찾아왔다. 큰아들의 부재가 주는 고통을 잊고 싶으셨는지, 어머니는 정말 하루하루 거짓말처럼 당신을 지워나갔다.


이불 홑청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도록 풀을 먹이고, 아랫목에 묻어둔 오 남매의 밥사발을 지키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어머니의 노년이 이렇게 될 줄 당신은 상상이나 했을까. 자식들한테 단물 다 빼앗기고 흐물흐물한 껌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기억이 널 뛰듯 오락가락하지만, 가슴은 늘 오 남매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이제는 보기 드물지만, 가끔 길을 가다 껌딱지가 붙어있으면 그날의 풍경이 선연히 떠오른다. 언젠가 공원 산책로에서 껌을 떼어 내며 구시렁거리던 미화원을 본 적이 있다. “에이, 몰염치한 인간들. 단맛이 날 때는 씹고 단맛이 쏙 빠지고 나면 이렇게 아무 데나 내던지냐? 지들 어미 아비한테도 그럴까?”라고 하는 아저씨의 혼잣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도 어머니가 요양원에 계시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요양원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평생 자식들 키우고 공부시키느라 청춘을 다 바쳤지만, 갈 곳은 한 군데뿐이라니. 이제는 단물 빠진 껌들이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요양원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껌의 기능이 업그레이드되었듯 그곳이 껌들의 종착지가 아니라, 그동안 애썼다고 위로해 주는 공간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11년 동안 요양원의 터줏대감으로 계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가실 때에도 자식들 봐주느라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딱 하룻밤 주무시고 떠나셨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면서 생각했다. 단물 빠진 껌이라고 껌 자체의 성질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입냄새를 없애고 졸음을 쫓아주던 껌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해야 한다고.

(수필과 비평 2025년 11월 발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화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