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같기도 하고, 여인네의 젖가슴 같기도 한 것이 볼수록 신기하다. 잘라놓으니 선홍색 빛깔은 또 얼마나 예쁜지. 잘 익어 부드러운 무화과로 잼을 만들면서 무화과 예찬을 하는 내가 새삼스럽다.
무슨 조화 속인지, 딸애를 임신하면서 과일이 싫어졌다. 한창때는 앉은자리에서 새콤한 자두와 딸기를 한 바가지씩 먹던 내가 과일 생각만 해도 신물이 넘어왔다. 입맛이 그렇게 변할 줄이야. 뱃속에 그 작은 생명체가 내 식성까지 바꾼다는 것이 신묘했다. 그때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과일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몇 년 전 지인이 무화과 한 상자를 가지고 왔다. 지인은 무화과는 맛이 없으니 잼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는데 입에 넣어보니 맛이 괜찮았다. 시거나 달지 않고 밍밍해 과일로써는 존재감 없는 맛이지만, 바로 그런 무심한 맛이 내 입맛을 사로잡았지 싶다.
무화과는 수더분해서 좋다. 촌 아낙처럼 숫접어 보이는 것이 맛도 유순하다. 더러는 무슨 맛으로 무화과를 먹느냐고 하는데 나는 싱거운 듯, 특별한 맛이 나지 않아 좋다. 생김도, 맛도, 과일로써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무화과를 보면 외할머니가 잇 겹친다.
삶이 늘 봄날 같을 수는 없지만, 외할머니의 삶은 대체로 무미건조했다. 할머니의 모습을 회상하면 하얀 무명 저고리에 냉소적일 만큼 웃음기 없는 얼굴과 꼭 다문 까뭇한 입술이 먼저 떠오른다.
아들을 낳지 못해 집안의 대를 끊은 할머니는 평생 주눅 들어 살았다. 속살이 희면 박복하다는 옛 어른들의 말을 뒷받침하듯 피부가 백옥같이 희고 고왔던 할머니의 인생에 그다지 달달한 맛은 없었지 싶다.
할머니는 딸 여덟과 아들 두 명까지 십 남매를 낳았지만, 여섯 명의 딸만 살렸다. 아들 둘과 딸 둘은 네 살을 채우기 전에 모두 가슴에 묻었다. 그 가슴으로 평생을 사셨으니 얼마나 뜨거웠을까. 할머니의 불덩이 같은 가슴도 무화과처럼 붉은 멍으로 가득했을 성싶다.
속으로 꽃을 피우며 가슴앓이하는 무화과처럼 할머니도 속에서는 열불이 일었지만, 겉으로는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도 좌불안석 못 하던 할머니가 유일하게 화를 삭이는 방법은 막걸리를 드시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화가 치밀면 내 손에 슬그머니 주전자를 쥐여주셨다. 어릴 때 외가에 가면 노란색 양은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받으러 다니는 게 내 일이었다. 할머니는 하늘을 보며 한숨을 돌릴 때도, 어지러운 마음을 비워낼 때도 막걸리를 찾았다. 그 시절 할머니를 철옹성처럼 버티게 한 것도 막걸리였으리라.
애끓는 속을 말해 무엇할까만, 그렇다고 숨죽이고 살자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들을 못 낳는 것이 당신의 잘못인 양 족쇄를 채우고 살던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엽렵하기가 이를 데 없는 할머니는 집안에 큰소리가 나는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하셨다. 할아버지 눈을 피해 딸들의 까막눈을 깨쳐주느라 숨바꼭질할지언정 눈 한번 크게 치켜뜬 적이 없다. 장대처럼 큰 키로 병치레하는 할아버지보다 살집이 있는 할머니가 더 힘이 세 보이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 어두운 시절에 할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보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 같았다.
세상에 무화과처럼 낮을 곳을 보는 열매가 또 있을까. 다들 자기가 잘났다고 으스대는 과일 무리에 끼지 못한 것만 봐도 그렇다. 꽃이 피지 않는다고 알려진 무화과는 가슴으로 꽃을 피운다. 태생이 시골 처녀처럼 순박하게 생긴 무화과는 부끄러움이 많다. 무엇이 부끄러워 나서지 못하고 숨어서 꽃을 피울까? 그 고운 빛깔의 꽃을 밖으로 쏟아놓으면 얼마나 예쁠까?
밤마다 뜨겁게 꽃을 피우면서도 가슴을 열지 못하는 무화과가 꽃을 품고서 열매가 되려니 상심은 또 얼마나 컸을까. 그래서일까, 무화과는 자글자글한 상념들을 씨앗처럼 품고 있다. 숱한 눈물로 얼룩진 할머니의 가슴에도 붉은 멍이 씨앗처럼 박혀 있을 것 같다. 왜 아니겠는가, 딸만 여섯인 것도 기막힌데 목숨줄 같은 자식을 넷이나 앞세웠으니 그 설움이 멍이 되고도 남았을 게다.
각다분한 팔자 때문일까. 할머니는 부지런히 몸을 부리며 억척을 떨었다. 낮에는 리어카를 끌고 잔반을 얻어와 돼지를 키우고. 밤에는 삯 바느질을 했다. 할머니의 꼼꼼하고 뛰어난 바느질 솜씨는 동네에서도 소문나 일이 끊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밤이 이슥하도록 바느질하고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농사일을 했다. 덕분에 여섯이나 되는 딸을 먹이고 입히는데 걱정이 없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워보니, 할머니가 막걸리 주전자를 끼고 사신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맨정신으로는 그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막걸리 한 잔에 화색이 돌고, 취기가 오르는 할머니의 뺨은 무화과 과육처럼 불그스레했다. 희뿌옇고 달착지근한 막걸리는 할머니의 족쇄를 단숨에 풀어주었다. 차오르는 화를 다스려야 했던 할머니한테 그보다 더 좋은 먹거리가 있었을까. 하지만, 그런 호사도 오래 누리지 못했다. 문드러진 속에 자주 술을 드셔서인지 할머니는 말년에 췌장암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당신이 죄가 많아 딸들이 고생한다며 눈물로 키운 딸들 덕분에 할머니의 마지막 길은 쓸쓸하지 않았다. 효능이 알려지면서 여왕의 과일로 이름값이 높아진 무화과처럼 할머니의 존재감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빛이 났다. 췌장암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맏딸인 친정어머니와 이모들이 번갈아 가면서 할머니 옆을 지켰다. 오랜 기간 참고 기다려야 열매 맺는 무화과처럼 모진 세월을 감내하면서 살아낸 결과였다.
아들이 없던 할머니는 당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강물에 뿌리고 절대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으셨다. 스스로 인생의 숙제를 못 마쳤다고 생각한 할머니가 딸들한테는 숙제를 넘기지 않으려는 배려심이었으리라. 원망도, 설움도, 미움도, 모두 가슴에 묻은 할머니가 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한 여자의 기막힌 서사도 그렇게 끝이 났다.
으깨 놓은 무화과에서 할머니의 선홍색 고운 가슴이 얼비친다. 문득 눈앞이 암암해지며 내가 무화과를 좋아하게 된 것도 무화과를 닮은 외할머니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외할머니를 만나는 동안 한바탕 끓어올랐다 잦아든 무화과는 어느새 말갛게 윤기 도는 무화과잼이 되었다. 인위적이거나 요란스럽지 않은 단맛에서 담백한 할머니 냄새가 나는 듯하다. 아침마다 빵에 잼을 발라 먹을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2025년 수필미학 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