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 대하여

by 박종희

천장에 대하여

박종희


모처럼 늦잠을 자던 날,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아 놀라 눈을 떴다. 조용히 내 갈피를 넘기며 스캔하는 것은 천장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이 천장이다. 잠결에 이라도 갈았던 날은 나도 모르게 천장부터 올려다보게 된다. 뒤통수가 따가워서다.


하나, 올려다보면 별거 없다. 그저 평편하고 반듯한 네모다. 외계인처럼 숨겨둔 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장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지 못한 것은 지난밤 의식 없이 보여준 행동 때문일 게다.


지레 발이 저려 매무새를 가다듬어보지만, 꿈쩍도 않는다. 60년이 넘게 살면서도 이렇게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는 상대는 못 본 듯싶다. 넓은 몸집에 비해 소견이 좁아 도무지 타협이 안 된다.


고여 있는 시간을 못 견디는 내가 맥 놓고 지내던 때가 있었다. 친정어머니가 쓰러지고 돌아가실 때까지 일 년 동안은 거의 비이성적으로 살았던 것 같다. 무대 위에 올려진 광대처럼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날 서 있는 신경을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보가 터져 식구들을 민망하게 했다.


새벽에 들어가 침대 모서리에 엎드려 아침을 기다리던 날도 천장은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남에 일이면 자다가도 일어나 촉을 세우는 그가 모르는 내 내밀한 사생활이 뭐가 있었을까. 세상을 경계하듯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던 나를 천장은 어떻게 읽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천장이 어디 내 집에만 있으랴. 갈수록 천장이 많아져 불안한 세상이다. 그 많은 천장에 나도 숟가락 하나를 얹는 일이 생겼다. 천장이 나를 읽으며 꼬투리를 잡아내는 것처럼 나도 우연찮게 흠을 찾아내는 일을 하게 됐다. 매일 지정된 티브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보고서를 쓰는 일인데 방송 사고는 물론이고 프로그램의 구성이나 진행자의 실수도 가려내야 한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기계적인 사고는 줄었지만, 가끔 외모를 비하하는 발언이나 방송에 부적절한 언어가 귀에 걸릴 때도 있다.


매일 실수와 오류만 찾다 보니 내 눈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실수를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인지 내용에 감동하기 어렵다.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면 지적한 내용이 다음 프로그램에 적용되는 것인데 사람을 읽는 무리는 도무지 융통성이 없는 것 같다. 작정하고 덤벼들어 목표를 정하면 어떻게든 그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네모에 갇혀 사는 것 같다. 세상이 모두 감시자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 까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구경거리가 되는 일도 허다하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카메라는 그렇다 치지만, 요즘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불법 영상이 난무한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도 딥페이크 영상이 떠돈다는 것에 할 말을 잃었다. 학생이 선생님의 사진을 합성하여 영상을 만드는 세상에서 이제 더는 안전한 곳이 없지 싶다. 선생님이나 친구를 곤경에 빠뜨리고도 아무 죄의식 없이 당당한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매일 뉴스를 봐야 하지만 요즘은 정말 뉴스 보기가 두렵다.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릴 때도 있고 왜곡되고 자극적인 기사에 머리가 이상해질 때도 있다.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지인이 찾아왔다. 독특하고 엉뚱해 눈에 띄는 타입이지만, 늘 밝은 에너지로 주위 사람들을 웃게 하는 그녀의 낯빛이 어두웠다. 어깨너머로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수척해 보였다. 커피잔을 입에 대고 입술을 적신 그녀가 자기는 사람들의 입에 물려서 죽을지도 모른다며 무심하게 툭 던졌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그녀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의 입에 물려있다고,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들었던 정보가 다소 부풀려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집안 좋고 인맥이 넓은 직원을 제치고 재력과 학벌, 어느 것도 내놓을 것 없는 그녀가 승진하니 동료들이 시기한 것이었다. 더구나, 승진과는 관계없는 성격과 독특한 스타일을 비웃듯 뒷담화 하는 것이 그녀를 더 아프게 했던 것 같다.


고개 숙인 그녀의 눈주위가 불그레해지는 것을 보며 평소 나는 그녀의 마음을 얼마나 잘 읽어주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매일 관계를 맺으며 살지만, 정작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일엔 인색하지 싶다. 평소 친동생처럼 살갑게 굴던 그녀를 소문 때문에 잠깐 달리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남의 말만 믿고 낯설게 대했던 것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보고 믿는 것 같다. 텍스트를 읽는 것은 당연시하면서 그림책을 보는 것엔 무심하지 싶다. 활자화되지 않은 언어와 몸짓에 얼마나 귀한 문장들이 숨어있는지. 사람 읽는 방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 겉모습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행간까지도 말이다.


어렵게 사실을 털어놓고 씁쓸해하는 그녀를 달래 보내고 나서 생각이 많아졌다. 처음으로 일과에 지쳐 잠든 남편과 딸애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30여 년이 넘도록 한집에서 살았지만 나는 남편과 딸애의 마음을 과연 잘 읽어주었던가. 자신이 없다. 아니, 어쩌면 내 입장을 합리화하면서 서운하게 할 때도 있었으리라.


다시 천장을 올려다본다. 그녀 때문에 너덜너덜해진 내 가슴을 그는 어떻게 읽었을까. 오늘 천장이 읽어낸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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