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박종희
바람에 이끌리듯 줄이 흔들리며 갑자기 남자의 몸이 휘청거린다. 낭창낭창하게 내딛던 발을 멈추고, 그렇다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겠다는 낭패한 표정이다. 마른침을 삼키며 남자를 지켜보는 이들의 손아귀에도 힘이 들어간다. 관객의 몰입을 끌려는 줄광대의 노련한 기법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그의 연기는 완벽했다.
위태롭게 발을 떼는 줄광대의 아슬아슬한 공연을 보면서 문득 젊은 날 선택의 길목에서 갈팡질팡하던 때가 생각났다. 결혼 후 딸애를 임신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워낙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첫 달부터 시작한 입덧이 오 개월이 지나도록 가라앉지 않았다.
세상에서 혼자 임신한 것처럼 유난 떤다는 말이 서러웠지만, 입덧은 갈수록 심해졌다. 초음파로 아이의 상태를 살피던 의사 선생님은 임산부에게 아주 희귀하게 나타나는 ‘임신오조’ 증상이라고 했다. 병원에 입원해서 속을 다스려도 울렁거림과 구토는 멈추지 않았다. 오죽하면 아이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몸이 약해 산모와 아기가 모두 위험하다고 했다.
사흘이 멀다 하고 결근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사직을 놓고 갈등하는 날들이 길어졌다. 동료들한테도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결국은 그만두기로 했다. 마음은 정했지만, 사직서를 제출하기까지 번민도 생겼다.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와 지속했을 때 일어날 일을 저울에 올려놓고 매일 밤 고민했다. 새털같이 가벼운 마음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달랐지만, 자라나는 생명체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때만해도 육아휴직 제도가 없었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양가 어른들은 두고두고 서운해하셨다.
아이 핑계를 댔지만, 결국 내 몸 편하자고 던졌던 사직서는 수시로 가시가 되어 내 가슴을 찔렀다. 딸애가 크면서 몸이 자유로워지니 세상 속에서 나만 무릎이 꺾인 것 같았다. 동기의 승진 소식이 들려올 때면 괜히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 ‘임신오조’로 사표를 던진 것처럼 삶의 길목에서 선택의 길 위에 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내 발목을 잡는 것은 건강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었던 나는 건강이 따라 주지 않아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았다. 갓난쟁이 때 백일해를 다스리지 못한 것도 고질병이 되었다. 돌멩이도 집어삼킨다는 한창나이에도 기지개를 켜지 못하고, 목을 칭칭 두르며 세상으로부터 바람을 차단하는 일에 이골이 났다.
안 그래도 소극적인 성격이 잦은 병치레로 더 소심해졌다. 갈림길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조금 더디더라도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했던 것 같다. 넓고 빠른 고속도로가 유혹했지만, 속도를 내야 하는 낯선 길에 발을 들여놓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조금만 방심하면 탈이 나는 체력 때문에 익숙한 길만 걸어온 지 30여 년이 지났다. 나이 들면 담대해지고 안 가본 길에 대해 호기심도 있을 법한데 고지식하게도 나는 아는 길만 걸었다. 세상에 얼마나 여러 갈래의 길이 있는데 뚜벅뚜벅 눈에 익은 길만 고집했을까.
눈을 감고도 줄을 건널 수 있을법한 그가 줄 하나에 노모까지 여덟 명이나 되는 식솔들의 목숨이 붙어 있어 다른 길을 갈 수 없었노라고 하소연한다. 어릴 때부터 어름사니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남자는 줄타기 광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집안에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줄 위에 서야 먹을 것이 생겼다. 어린 시절, 줄은 지치고 허기진 그의 마음을 달래주던 유일한 희망이었다. 잠깐 한눈파는 순간 떨어진다는 것을 일찍부터 터득한 그는 실수하지 않는 것만이 가족들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그는 어머니 때문에 광대가 되는 길을 선택했고 나는 아이 때문에 직장을 버렸지만, 우리는 결국 같은 길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그 길이 최선이었을지. 정말 다른 길은 없었을까? 만약 그때 고통스럽더라도 열 달을 견디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이는 무사했을지. 너무 멀리 달려온 듯하지만, 길 위에서 내가 걸어온 젊은 날의 발자국을 따라가 본다. 겁 많고 소심했지만, 제법 우쭐하기도 했던 내 서른의 길목이다.
서툴러서였을까. 지워진 길에 다시 길을 내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힘든 날을 견뎌야 내가 원하는 길에 도착하게 한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 같다. 다가올 미래는 생각지 못하고 그냥, 그 순간 내가 지켜내야 하는 것만 지키면 되는 줄 알았다.
그도 그랬다. 매일 공중에서 떨어지는 것이 무서워 도망치던 날 밤, 아버지의 손찌검과 술주정을 받으며 눈물 흘리는 어머니를 보았다. 밖에 나가 성공해서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숨 쉬는 것조차 고통이었던 어머니를 외면하지 못해 결국 외줄에 섰다. 그때 만약 숙명을 거역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그는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
예순을 넘기고 나니, 인생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숫자가 있는 면을 골라도, 사진이 있는 면을 골라도 아쉬운 것은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 때문에 미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 소심하게 선택한 길이 가져다주는 선물도 있다. 경험은 가장 객관적이고 따가운 조언을 하기 때문이다. 더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차분히 준비한 덕분에 두 번째 직장을 퇴직하고 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시간에 쫓기며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승진하려고 상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니 건강도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갈증은 남아 있다. 안 가본 길이 더 나은 길이라는 객관적인 증명은 할 수 없지만, 아직도 내가 선택한 길에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은 무슨 심사일까.
다음 공연을 위해 그가 다시 줄 위에 오를 준비를 한다. 그는 이번에도 속임수로 어깃장을 놓을까? 떨어질 듯 멈춰 서며 관객을 모으는 그의 줄타기가 눈속임이면 어떠랴.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그가 그저 허공에서 무탈하길 빌 뿐이다.
길은 여전히 박제된 그리움이다. 그가 걷는 외길도 그리움을 찾아가는 이정표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