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새

by 박종희

이음새



어찌 이런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 눈앞이 깜깜했다. 초보자가 사용하기 편리하다더니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낭패를 보는 기구(器具)였다.

나는 눈썹 숱이 많은 편이다. 유난히 검고 숱이 많아 배추도사처럼 답답해 보인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화장하는데 젬병이라 손질은 엄두를 못 냈다. 눈썹이 관상을 바꾼다며 지인들이 눈썹 문신을 하자고 조르면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다. 예전에는 파마나 염색을 하면 서비스로 눈썹 정리를 해주었는데 이사한 신도시에서는 그런 미용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자라나는 새싹처럼 왜 이리 잘 자라는지, 거울을 볼 때마다 거슬리는 눈썹으로 고민하던 내가 초보자도 사용하기 쉽다는 말에 혹해 전동 눈썹 정리기를 샀다.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고 유독 숱이 많은 눈썹의 중앙 부분에 정리기를 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금방 댔다가 뗀 것 같은데 눈썹 부위가 훤해졌다. 수북한 부분을 정리하려고 한 것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눈썹 정중앙이 고속도로처럼 뻥 뚫렸다.

신기했다. 눈썹이 망가지니 사람 이미지가 달라 보였다. 다른 사람 같았다. 잘려 나간 눈썹을 보고 황망해하는데 딸애가 눈썹연필을 사다가 끊긴 부분을 이어 그리라고 했다.

하나, 눈썹을 그리는 일도 훈련이 필요했다. 깔끔하고 세련되게 눈썹 손질을 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는데 갑자기 그들이 존경스러워졌다. 휑한 부분을 채워 눈썹 앞부분과 뒷부분을 잇는 일이 만만하지 않았다.

색깔을 맞추는 것부터 수십 번을 그리며 연습한 끝에 연필로 채운 이음새가 눈썹을 연결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한 알아채지 못할 눈썹 이음새를 보며 헛웃음을 웃었다.


지난달에 친정 형제 모임이 있었다. 큰오빠가 시골집을 개조해 지은 별장으로 동생들을 초대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에 한 번 다녀왔는데 그사이 리모델링을 해 놓아 보기 좋았다. 꽃과 나무와 돌로 예쁘게 가꾼 정원과 육 남매가 편히 쉴 수 있도록 구석구석까지 신경 쓴 흔적에서 오빠의 마음이 읽혔다. 오랜만에 모인 동생들이 보기 좋은지 오빠는 고기를 굽고 연신 먹을 것을 내놓으며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마치 자식들을 바라보는 친정아버지의 눈빛처럼 애틋해보여 마음이 짠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형제자매들 사이도 예전 같지 않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명절과 생신날 등 한 해에 서너 번은 만났는데 이제는 일 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어렵다. 어쩌면, 자식들의 매개체였던 이음새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부모라는 이음새가 끊어지면 형제간에도 시들해진다. 각자 자기 가족 챙기느라 형제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불과 삼십 분 거리에 사는 작은 오빠와 여동생들도 얼굴 보기 어렵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가끔 만나 밥도 먹고 했는데 이제는 친척 어른이 돌아가시거나 조카들의 결혼식장에 가야 만난다. 하물며, 핏줄을 중시하는 우리도 이런데 앞으로 자식들 세대는 어떻게 될까? 외동인 딸애를 생각하면 쓸쓸해진다.

장마 소식에 급하게 성사된 만남이지만, 육 남매 모임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노래방 기계와 밴드가 있어 목이 터지라 노래를 부르고 흥이 있는 형제들은 원 없이 끼를 발산했다. 우리 형제들한테 이런 면이 있었던가. 처음 보는 동생들의 유쾌하고 멋진 모습에 큰오빠는 내년에 가족 모임은 프로그램을 짜서 만나자고 했다.

열 명이나 되는 동생 부부들 먹이고 재우느라 힘들었을 텐데 벌써 내년 모임을 생각하다니. 형제 많은 집에 장남으로 태어나 어깨가 무거웠던 큰오빠가 이제는 육 남매의 이음새 역할까지 자처한다. 즐겁게 하룻밤을 보내고 헤어지던 날, 별장을 털듯 바리바리 챙긴 동생들의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들던 큰오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보살피는 큰오빠가 고마우면서도 언젠가는 또, 이음새가 끊어질 것을 생각하니 서글퍼진다.

매일 아침 눈썹을 이어 붙이느라 연필 질이 익숙해졌지만, 언젠가는 연필이 없어도 되는 날이 오리라.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눈썹처럼 육 남매의 우애도 나날이 깊어졌으면, 이어 붙인 이음새가 떨어질까 봐 애태우지 않도록 서로에게 이음새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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