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 판매 마지막 날, 대형마트의 공기는 전쟁터를 닮아 있었다. 카트는 서로의 길을 밀어내며 뒤엉키고, 사람들의 한숨은 계산대 앞 긴 줄 위에서 얇게 포개졌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지 이십여 분 남짓,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그러나 계산원의 손길이, 마치 잘려 나간 문장처럼, 돌연 멈췄다.
투명한 비닐에 싸인 애호박 한 봉지를 이리저리 뒤척이던 직원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무전기를 든 아르바이트생을 불렀다. 아무리 살펴도 있어야 할 ‘바코드’가 없다는 것이다.
검수대까지 급히 다녀온 직원이 알아 온 값은 고작 천 원. 오늘 기준으로도 한참 저렴한 가격이다. 어제 들어왔다는 이 호박은, 방금 매대에 오른 다른 것들과 모양도, 단단함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식’하나 없다는 이유로, 이 호박은 유통의 질서에서 미끄러져 나와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전산상으로는 존재하나 실질적으로는 증명되지 않는 호박의 처지를 보고 있자니, 문득 우리네 인생의 서글픈 뒷모습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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