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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n 03. 2024

가불이냐, 후불이냐

건강과 다이어트, 다시 시작된 지옥.


심호흡을 크게 하고 체중계를 올라가 본다. 예상보다 웃도는 숫자가 찍힌다. 디지털 숫자가 깜박깜박 점멸한다. 조금이라도 숫자가 내려가기를 기다려 보지만 애석하게도 변함은 없다. 이제 정말 큰일이다. 돌일 킬 수 없음을 직감한다.

 



다이어트.

참 그놈. 한평생 동안 날 지독하게 괴롭혀 왔다. 모태마름? 어릴 때부터 나와 연이 없던 말이다. 초등학생 때는 소아비만이었고, 성인이 돼서도 꾸준히 내 발목을 잡고 있다. 간간히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있을 때나 큰맘 먹고 다이어트를 했었다. 취업준비 한다고 다이어트, 코로나 때 너무 살쪄서 죽겠다 싶어서 다이어트, 결혼준비 하면서 다이어트. 수차례 다이어트를 했지만 체중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해서. 간단명료한 만큼 문제해결방법도 분명하다. 덜 먹고, 운동하면 된다. 머리로는 알지만 시작이 두렵고 힘들었다. 당시 고통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안으로 움츠려 들고 애써 눈을 돌려왔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예감했다. 나에게는 가족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 남편과 가정을 꾸렸기에 우리 가족을 위한 건강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했다. 나 또한 살이 찌면서 외내부로 위축되고 날카로워졌는데 그런 내 모습으로 신랑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했다. 우리의 지금과 미래를 위해 결단이 필요했다. 

  



결심이 서자 유튜브로 다이어트 식단 영상을 보고, 근처 헬스장을 물색했다. 조건은 단 하나. 가까울 것. 아무리 좋은 헬스장이어도 멀면 귀찮고 안 가게 된다. 가까우면서도 시설도 노후되지 않고 쾌적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마침 집 앞에 괜찮아 보이는 곳이 있었다. 걸어서 5분 거리, 넓은 공간, 다양한 운동기구, 경력 있는 트레이너 선생님들. 상담실에서 1시간가량 상담 끝에 우린 헬스 12개월과 PT30회를 끊었다. 기간도 길고 2명이다 보니 생각해 둔 마지노선 금액보다 훨씬 상회하는 금액이 찍혀있었다. 결혼식 이후로 이렇게 큰 금액을 한 번에 결제하긴 처음이었다. 절로 손이 덜덜 떨렸다.  





고작 헬스장 다니는 것에 한 달 월급을 투자를 했다. 백화점에서 명품백을 사면 가방이라도 남고, 여행을 가면 추억과 사진이라도 남는다. 어떻게 보면 물질적으로 남는 것이 전혀 없는 헬스장에 거금을 지불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영수증을 보며 여전히 손을 달달 떠는 신랑을 보며 말했다. 


- 우리가 지금 헬스장을 등록하지 않고 건강을 방치하면 더 큰 지출을 하게 될걸? 병들어서 병원 다니면 병원비도 들고 시간과 스트레스도 받을 것이며, 더 나이 들어서 노인이 되면 병원생활만 하다가 죽을 수 도 있어. 요양병원이 한 달에 얼마인 줄 아니? 최소 다달이 200만원씩 나가. 우린 애도 없는데 서로 건강을 챙기는 것이 돈 아끼는 거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셈이지. 



 

가불이냐, 후불이냐? 우린 가불을 택했다. 그날 후로 영수증은 잘 보이도록 냉장고에 붙여뒀다. 일종의 금융치료 효과로 요즘 우리 부부는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고 있다. 어릴 땐 어른들의 "건강, 건강" 잔소리가 지겹고 이해가 안 갔다. 이제 나이를 먹고 앞자리가 바뀌어 가면서 왜 그렇게 강조하셨는지 깨달아 가는 중이다. 좀 더 덜 쪘을 때 시작했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는 뒤로 하기로 하고 앞으로를 하루하루 건강하게 지내고자 한다. 잊지 말자. 지금 괜찮다고 나중에도 괜찮지 않다. 잊지 말자. 건강은 후불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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