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비번의 사고

흉액의 기습

by 갑비

소공동에서 해외출장을 다니던 h는 동남아 지사로 발령이 날 무렵 회사를 그만두고 지리산이 보이는 농가로 귀촌했다. 고향이 남해였지만 그쪽에 연고는 없었다. 별안간 해머를 맞은듯한 그의 아내는 애들을 친정에 맡기고 안절부절 못 가겠다고 버텼다. h의 반응은 그럼 이혼하자. 였다.


지리산으로 내려간 h는, 낡은 한옥을 손수 개조했고 틈날 때마다 산의 능선을 타며 살 것 같다고 했다. 농사도 짓기 시작했다. 내외 두 사람이야 귀거래사의 안빈낙도를 흉내 낸다 해도 아이들의 교육비 에는 애비도 용가리 통뼈가 될 수는 없었다.


겨울 농한기에 산지킴이라는 요원으로 주산(走山) 경계할 무렵... 쉬는 휴일에 하루만 당번을 바꿔달라는 동료의 부탁을 받았다. 아내는 그날 유독 가지 말라고 했고 본인도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하지 못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해빙기 산악의 잔도길을 도는데 우찌끈 하는 소리와 동시에 위에서 큰 바위가 굴러 떨어졌다. 기함하는 찰나 머리와 몸은 웅크려 비켰지만 발목을 꽝하고 덮쳤다.

으스러진 발을 빼지 못한 채 폰으로 119 조난 신고했으나 헬기가 뜬 건 2시간 만이었다.


지역 응급병원에서 절단할 수밖에 없다고 하자 h의 아내가 울고불고 매달렸다. 결국 혜화동 병원까지 올라와 인공관절을 해 넣었으나 간헐적 통증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소식을 들은 지 해를 넘기고 잠시 올라온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h는 지팡이를 짚고 정상적인 걸음을 걷지 못했다. "그날 그 사람이 당할 사고를 제가 당했다" 며 우울하게 후회하고 있었다. 멀쩡했던 사람이 순식간에 장애인이 되다니


횡액수는 일상에서 틈이 벌어지도록 유인하고 매복했다가 습격한다. 소공동에서 갑자기 낙향한 궤도 이탈과 불현듯 한 비번 근무 부탁은 액이 침투하는 수순이었 셈이다. 易曰 凶生乎動者也 라고 했다. 움직임에서 흉이 발생한다는 경고다.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던 고대사회에서 출행점(出行占)을 갑골문자로 살폈 기록들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