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옆에 서 있는 법

엄마 언니를 잘 부탁해요

by 스카이블루 킴

4살 터울인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야! 이번 주 토요일 목욕하러 가자~”


수술 전 여러 가지 검사로 병원에서 대기하느라 지쳐 있던 터라, 그 전화가 더없이 반가웠다. 조만간 입원해 수술을 받을 텐데, 그전에 때라도 밀고 시원하게 들어가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중간에 끼인 나는 늘 애매한 위치였다. 위로 있는 언니는 허약체질에 새침데기라 부모님의 돌봄을 한 몸에 받는 도도한 공주과였고, 아래 동생은 막내라고 또 애지중지 키워졌다. 무척 엄격하고 무서웠던 아버지는, 당신 역시 할아버지를 닮아 명이 길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어린 막내딸을 두고 가실까 봐 유독 더 예뻐하셨다.


가운데 있던 나는 언니와 싸우면 ‘동생이 돼서 대든다’며 혼났고, 동생과 싸우면 ‘언니가 돼서 양보하지 않는다’며 혼났다. 기막히고 억울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언니는 몸이 약했고, 동생은 어려서, 각종 심부름은 늘 내 차지였다. 요즘처럼 편의점과 마트가 곳곳에 있고 인터넷 쇼핑으로 문 앞까지 배달되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두부 한 모를 사려 해도 왕복 30분 거리의 시장을 다녀와야 했다.


심부름은 정말 고역이었다. 어린 마음에 심부름을 다녀와 보면 편하게 있는 그들이 괜히 미웠다. 언니는 감히 원망할 수 없었지만, 동생은 얄미울 때가 많았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친구처럼 늘 붙어 다니며 함께 놀았고, 그만큼 싸움도 잦았다. 오죽하면 엄마가 우리를 마주 보게 묶어놓기까지 하셨을까.


그러다 동생이 중학생이 되면서 폭풍 성장을 하더니, 어느 날 내 키를 훌쩍 앞질러 버렸다. 그때부터 평화가 찾아왔다. 팔다리가 짧은 신체조건이 싸움에 불리하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나는 더 이상 동생의 도전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매는 결혼하면서 더 각별해지는 것 같다. 대학 때부터 떨어져 지내다 결혼과 함께 고향을 떠난 언니와는 심리적·물리적 거리감이 있지만, 만나면 여전히 애틋한 살붙이의 사랑이 느껴진다.


반면 동생과는 결혼 전까지 같은 방을 쓰며 속 깊은 대화를 나눴고, 간혹 밤중에 집을 탈출해 놀다 들어오는 공범이기도 했다. 그렇게 은밀한 즐거움을 나누던 우리는, 내가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동생도 결혼했고,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함께하며 더 끈끈해졌다.


결정적으로 내가 동생을 다시 보게 된 계기는 엄마를 보살펴드리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나날이 연로해지며 자녀의 도움이 필요해진 엄마에게, 제일 만만한 자식은 나였다. 소소한 심부름부터 시작해 각종 민원을 처리했고, 나중에는 아기처럼 목욕시켜드려야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 시간을 함께 보내며 나는 동생의 올곧고 아름다운 마음을 보았다. 힘쓰는 일은 늘 도맡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내가 힘에 부쳐 투덜거리기라도 하면 오히려 언니처럼 나를 위로하고 다독였다. 돌봄은 사람의 본심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말이 아니라 태도로, 의지가 아니라 반복으로. 그 시간을 함께 지나며 나는 동생을 ‘어린 막내’가 아니라, 나와 같은 어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대충 씻은 곳을 동생은 다시 한번 더 밀어준다. 마치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 엄마가 우리에게 해주던 것처럼. 나는 그 시절 어린아이처럼 팔다리를 맡긴 채, 묵묵히 때를 미는 동생을 바라봤다.


목욕을 마친 뒤, 속 깊은 동생은 엄마가 계신 추모공원으로 나를 데려갔다.

“언니, 엄마한테 잘 봐 달라고 말했지? 나도 언니 수술 잘 받고 얼른 낫게 해달라고 엄마한테 부탁했어.”


나도 엄마에게 가볼 생각은 미처 못 했는데, 이럴 때면 동생이 영락없는 언니다. 가슴속에서 물컹한 뜨거움이 올라왔다. 엄마는 떠났지만, 엄마가 우리에게 남긴 방식은 남아 있었다. 돌보고, 챙기고, 말없이 옆에 서 있는 법. 그건 아마 말로는 전해지지 않는 유산일 것이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나 때문에 힘을 많이 쓴 탓인지 동생은 아주 맛있고 복스럽게 잘 먹었다. 덩달아 나도 배불리 먹었다. 동생은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경쾌하게 차를 몰고 사라졌다.


순리대로라면 막내는 우리 5형제의 장례를 다 치를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농담 삼아 형제들에게 말하곤 한다.

“언니야, 막내한테 잘 보여야 한대이~”

“오빠, 막내한테 잘하셔요. 애가 우리 장례 치러 줄 사람이에요~”

화요일 연재
이전 05화유방암 분야의 명의를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