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푹 주무셔요
드디어 수술 날이었다.
밤새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몸을 일으키니 여섯 시였다.
입안이 바짝 말라 있었지만, 전날 밤 12시 이후로는 물 한 방울도 마시면 안 된다는 신신당부가 떠올라 입만 헹구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평소에 일어나 별생각 없이 마시던 음양수가 오늘따라 간절하게 느껴졌다.
일곱 시쯤 되자 간호사가 와서 림프절 검사를 하러 지하 1층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어제 휴게실에서 환우들끼리 수다를 떨다 들었던, 수술보다 더 아프다는 ‘공포의 유륜 주사’와 감마카메라 촬영이 바로 그 검사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보다 어려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엉거주춤 인사를 하였더니 오늘 나와 같은 날 수술을 받는 환우라고 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같은 처지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지하 1층에 도착하니 먼저 찜질기를 어깨에 15분 정도 대고 있으라고 했다. 약물이 잘 퍼지게 하기 위함이라 했다. 시간이 참 더디게 흘렀다. 담당의가 오고, 먼저 들어간 환우는 약간 상기된 채 나왔다.
‘어? 별로 안 아픈가?’
내 차례다. 한쪽 팔이 다 나오게 옷을 벗고 고개를 돌리자 담당의가 말했다.
"아픕니다. 조금 아픕니다."
곧바로 유륜 부위에 주삿바늘이 깊게 들어왔다.
"으악... 아아악." 눈물이 절로 흘렀다.
"많이 아프죠. 네 아파요. 한 대만 더 놓을게요."
다시 바늘이 들어오자 세상에 이런 고통이 있을까 싶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나오니 먼저 맞은 환우가 가슴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 옆에 가서 앉아 따지듯 물었다.
"아니, 안 아팠어요? 어떻게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그 주사를 맞을 수가 있어요?"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아뇨, 저도 아팠어요. 소리가 나오려는 것 입술을 꽉 깨물고 참았어요. 내가 소리 지르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아서요."
“오, 마이 갓!!”
순간 눈물이 쏙 들어가면서 내 나이가 부끄러워졌다. 자세히 보니 그녀는 단아한 모습은 오히려 강인함을 품고 있었다.
병실로 돌아와 수술복을 입으니 비로소 현실이 다가왔다. 목이 타서 또다시 입을 헹구었다. 정확한 수술 시각은 알 수 없었고, 그저 연락을 기다릴 뿐이었다. 불안과 초조함을 내보내려 길게 심호흡했다.
전화가 와서 보니 남편이었다. 코로나 이후로 병실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환자가 나가서 만나야 하는 시스템이다. 수술을 앞둔 대기 상태라 멀리 가지는 못하고 엘리베이터 옆 의자에 앉았다. 남편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좀 안정되어 농담하며 웃고 있는데, 갑자기 간호사가 수술실 내려갈 시각이 되었다며 찾으러 찾아왔다.
이동 침대를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수술실로 향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침대 위에서, 만약 가족이 울며 매달리기라도 한다면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수술실. 분주히 움직이는 의료진 사이로 집도의 유 교수님이 나타났다.
“한숨 푹 자고 나면 다 잘되어 있을 테니, 마음 놓고 주무세요.”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자 심하게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가스 마취의 여파였다. 수술은 부분절제로 깔끔히 끝났고, 림프절 전이도 없어 하나만 제거했다고 수술 결과를 알려주었다.
병실로 돌아오니 추위가 몰려왔다. 체온은 34.9도. 간호사가 재측정을 하더니 온풍기를 틀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따뜻한 공기 속에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깨어보니 오후 4시. 남편은 간호사로부터 오늘은 면회가 안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2시경 집에 갔다고 했다. 수술은 두 시간가량 진행되었고, 목구멍의 불편함과 헛구역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간호사가 와서 기침을 많이 하고, 들숨 날숨을 많이 하라고 일러주고 갔다. 5시경 물을 마셔보고 구토 증상이 없으면 6시 반경에 죽을 주겠다고 하였다. 사실상 어제저녁밥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꼬박 하루를 굶은 것이다.
구토가 멈추자 죽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래, 이 맛이야!’라는 말로 절로 나왔다.
죽을 먹으니 드디어 살맛이 났다. 아니 ‘살았구나’하는 실감이 났다.
다음날, 유 교수님은 여러 의료진과 함께 회진을 오셨다. 나 보고는 수술 범위가 넓지 않았고 림프절도 깨끗한 거 같다고 하시며, 큰 걱정하지 말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고 나가셨다.
가만히 보니 환자 한 명, 한 명 다 어깨를 두드리며 온기를 전하고 있었다. 그분의 팬덤이 왜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