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호르몬제와 방사선, 몸이 겪은 변화들
수술 후 처음으로 외래진료를 보는 날이었다. 수술시 떼어낸 조직으로 다시 병기를 확정하고, 그에 따라 이후 치료가 결정된다기에 조금 긴장되었다. 지난번에도 설마 하다가 유방암 0기로 판정받았고, 0기니까 괜찮다고 했다가 결국 1기로 바뀐 선례가 있었다. 그래서 더 신경 쓰였던 것 같다.
예약 시간은 오후 4시였지만, 실제로 내 차례가 돌아온 건 5시가 다 되어서였다. 기다리는 사이 수술 동기를 만나 안부를 묻고 각자의 경과를 나누다 보니 수다 꽃이 피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컴퓨터 모니터에는 나의 의료 정보가 떠 있었고, 간호사는 책상 위에 조직 검사 결과지를 올려두고는 옆 진료실로 빠르게 이동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모니터와 종이 위로 향했지만,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 부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알지도 못하는 전문 용어로 가득한 영문 차트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모니터와 차트를 찬찬히 들여다보시던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술 전에는 0기 상피내암으로 알고 오셨는데, 슬라이드에서 조그마한 미세 침습이 보였고, 수술 시 떼어낸 조직 검사 결과에서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방암 1기로 확정합니다. 다행히 항암치료는 필요 없고, 여성 호르몬 억제제 복용과 방사선치료를 20회 정도 받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나의 암은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었다. 암세포가 여성 호르몬에 반응하는 유형이라, 몸속 여성 호르몬을 줄이거나 암세포가 호르몬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 호르몬 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재발 우려를 낮추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또 수술이 눈에 보이는 암을 제거하는 치료라면, 방사선치료는 혹시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암세포를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쉽게 풀어 설명해 주셨다. 종양이 있었던 자리 주변에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에, 다시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치료라는 것이다.
통계적으로도 수술만 했을 때보다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병행했을 때 재발률이 확실히 낮다고 했다. 방사선치료 횟수가 생각보다 많았고, 호르몬 약을 5년이나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잠시 놀라긴 했지만, 나는 착한 농부가 되기로 했기에 교수님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약 처방과 방사선치료 일정을 잡았다.
약국에서 처방대로 산 약은 아나스트로졸 1mg이 주 성분인 에이덱스. 1mg이니 크기도 새끼손톱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작은 한 알의 역할은 여성 호르몬 생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에 따른 부작용 목록은 생각보다 길었다. 홍조, 무력감, 관절통과 근육통, 구역질, 발진, 피부 건조, 모발이 가늘어짐, 설사와 구토, 미각 변화, 간 수치 상승, 콜레스테롤 증가, 두드러기, 간염, 방아쇠손가락증….
매일 같은 시각에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약사의 말에 휴대폰 알람을 하나 더 추가했다. 60개월, 1,825일의 긴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아무 일 없을 수도 있지만, 5년만 잘 관리하면 다시 건강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믿어보기로 했다.
에이덱스를 복용하면서부터 손가락, 발가락을 비롯한 관절통이 심해졌고 피부 건조가 생겼으며, 불시에 갱년기때처럼 등에 땀이 쫙쫙 차오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부작용 목록에 있는 것이라 그러려니하면서 버텼다.
8월 초부터는 방사선치료가 시작되었다. 보통은 수술 후에 한 달 정도 지나면 시작하는 치료지만, 환자가 많아 일정이 많이 밀린 상태였다. 정확한 부위에 방사선을 조사하기 위해 초음파로 위치를 확인한 뒤, 좌표처럼 잘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표시했다. 염천에 방사선치료보다 더 힘든 일이 표시가 지워지지 않게 유지하는 거라고 하면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랬다.
방사선치료는 총 20회, 치료 시간은 15분 남짓이었지만, 왕복 이동 시간까지 포함하면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소요되었다. 처음에는 방사선 치료로 인한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매일 같은 자세, 그것이 치료의 기본이라고 했다.
방사종양학과 교수님은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도 함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체력 유지가 중요하니, 깨어 있는 시간에 최대한 많이 먹어서 체중을 유지하라고 하셨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매주 체중을 재며 치료를 견딜 체력을 관리했다.
10회를 넘기면서부터 하루가 눈에 띄게 버거워졌다. 조사 부위가 붉어지거나 화끈거리는 증상은 없었지만, 속이 메슥거려 식사가 힘들었고, 몸이 무겁고 축 처지는 피로감에 반쯤 기대어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남편은 그런 나를 안타까워했지만, 현실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위에 도움을 청했다면 기꺼이 손 내밀어 줄 사람도 많았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는 날들이 반복되면서 점점 더 힘들어졌다. 치료받고 와서 반쯤 드러누워있다가, 간신히 기운을 차려 다음 날 또 치료받으러 가고, 돌아오면 다시 축 늘어지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야말로 간신히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다 지나가 버렸고, 그렇게 일상이 조금씩 무너져 갔다. 결국 방사선치료 12회차를 받던 날, 요양병원 입소를 결정했다. 수술 후에도 어떻게든 유지해오던 체력이 방사선치료를 거치며 고갈되어 버린 것이다.
수술이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