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바로 이 맛이야
20년 전 아빠가 암투병하실 때, 엄마는 종일 쉬지 않고 부엌을 오가셨다. 아빠를 위해 음식 재료를 씻고, 다듬고, 조리하며 뭐라도 드실 수 있는 음식을 마련하려 애쓰셨다. 아빠의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마음 하나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아프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남편 대부분은 아내의 병구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볍게 봤던 방사선치료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메슥거림, 두통, 기력저하, 근육통, 관절통 등을 동반하였다. 밥도 못 먹고 축 늘어져서 있다가 간신히 기력을 회복하여, 다음날 치료받고 오면 다시 늘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수술 후 회복도 순조로웠는데 방사선치료가 날 잡을 줄이야. 하지만 특별히 어떤 대책도 없어 그저 버티고 있었다. 방사선치료 12회 차, 내 순서를 기다리며 간신히 의자에 앉아 있는데 암 요양병원 홍보를 나온 여성이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그녀를 따라 나가며 물었다.
“잠깐만요, 거기 뭐 하는 곳이에요?”
그녀는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핸드폰을 꺼내 요양병원에서 제공되는 식사가 담긴 식판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었다. 난 그 순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 저기 가면 살 수 있겠다.’
암 요양병원이 있다는 건, 수술하러 갔던 날 홍보물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양병원은 상태가 매우 심각하거나, 집에서 돌봐 줄 사람이 없거나, 혹은 생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래서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힘들어지자, 그제야 눈이 번쩍 뜨였다. 사람은 역시 자기에게 뭔가 와닿아야 보이고, 귀가 열리고, 마음도 열린다.
암 요양병원은 암 환자를 위한 특화된 공간이라 일반 요양병원과는 조금 다르다고 했다. 면역주사, 고주파 온열치료, 고압 산소치료, 암성통증을 완화하는 한방치료 등 암 환자에게 맞춘 다양한 치료와 함께 암 환자 식단이 제공된다고 했다. 하지만 솔직히 다른 말들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치료들이 뭘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저런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어디라도 따라가고 싶었다.
그랬다. 내가 암 요양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세 끼 식사였다. 암 수술 이후 남편은 집안일 대부분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길이 닿지 못하는 부분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식사였다. 밥이야 말도 하는 훌륭한 밥솥이 척척 잘 해내고 있었지만, 반찬을 만들거나 요리하는 일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남편은 40대 초반, 60 이후의 삶을 대비해야 한다며 토요일마다 요리학원에 다녔다.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땄고, 제과·제빵 과정을 수료했고, 한식 조리사 과정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그 실력을 집에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기능은 몸이 기억하는 거라니, 언젠가는 쓰일 날이 오겠거니 했지만, 집에 남은 건 수강할 때마다 받아온 앞치마뿐이다. 그러다 보니 아파도 내가 직접 요리해서 먹는 방법밖에 없었다. 매 끼니를 그럴 수는 없어 주로 점심이나 저녁 한 끼 정도만 챙겼다. 못 먹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양병원에 와 보고서야 내가 얼마나 부실한 식사를 해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나는 매끼 식사하며 감탄했다.
영양 잡힌 식사 덕분인지 나흘 만에 몸무게가 700g이 늘었다. 천성적으로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이러다 나중에는 다이어트를 고민해야 할 날이 오는 건 아닐까 싶어질 정도였다. 방사선치료를 담당한 교수님은 암 환자는 체중을 늘려야 치료를 견딜 수 있다며, 잠자는 시간 외에는 뭐라도 계속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이야기다. 방사선치료를 받고 나면 속이 메슥거려, 토하지 않으면 그나마 선방이기 때문이다.
암 요양병원에서 실시하는 항암 식이요법을 살펴보니 음식 재료부터 달랐다. 국내산 유기농과 친환경 농축산물을 사용하고, 천연 조미료로 간을 하며, 모든 국물은 채소 수로 낸다고 했다. 매일 도정한 쌀로 지은 잡곡밥이 나오고, 아침마다 해독 주스가 제공된다. 격일로는 국내산 콩을 전통 맷돌로 간 두유가 나오고, 주 4회 직접 만든 요구르트도 제공된다. 식기는 방짜 유기 수저를 사용한다. 방짜 유기는 자체적으로 유해균을 살균하는 능력이 있고, 열전도율이 높아 음식 온도를 오래 유지해 준다고 했다. 한마디로, 밥상을 받는 순간 괜히 신분이 상승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환자 대부분은 이 밥상을 절반 정도밖에 먹지 못한다. 음식물 쓰레기가 적지 않게 나올 것 같아 환경적인 면에서 걱정도 되지만, ‘뭐라도 입맛에 맞는 게 있으면 먹고 힘내시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 오히려 고마웠다. 생각해 보면 일반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환자 식판이 말끔히 비워져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다. 내가 이 식판을 찍어 남편에게 보내자, 남편은 “그걸 네가 어떻게 다 먹느냐”고 했다. 먹는 데까지 먹고, 소화하려고 운동도 한다고 하니 무리는 하지 말라며 말끝을 흐렸다. 내가 그동안 없어서 못 먹은 줄도 모르고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밥상은 80% 이상 비워졌다. 그저 잘 먹는 것이 내가 나를 돌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였기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 어렸을 때 간혹 토라져 밥을 먹지 않는 나에게 엄마는 “사람은 창시를 속이고는 못 산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제는 그 말뜻을 진정 알것 같다. 건강한 사람은 물론이고, 환자들도 ‘밥심’으로 산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까. 혹시 주변에 같은 경우의 사람이 있다면 요양병원 입원도 고려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