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경계 사이에서
평생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를, 여자들은 아이 낳은 이야기를 사골처럼 우려낸다지만, 요양병원에서는 자신의 병력과 투병기가 가장 자연스러운 화제가 된다. 새로운 환우가 오거나, 아직 말을 많이 나누지 못한 이와 한 공간에 있게 되면 가장 먼저 건네는 질문은 “어디가 아파요?”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라 불쾌할 수도 있는 질문이 이곳에서는 “이름이 뭐예요?”보다 더 쉽게 오간다. 그러다 보니 이름은 몰라도 그 사람이 유방암인지, 난소암인지, 폐암인지, 혈액암인지, 몇 기인 지, 전이인지, 재발인지까지 알게 된다. 병명이 곧 소개가 되고, 수술 횟수가 이력이 되는 공간. 그곳에서는 아픔이 신분증처럼 통용된다.
내가 머물렀던 여성전용 암 요양병원에는 유방암 환자들이 특히 많았다. 병기에 따라 항암 여부가 결정되고, 대부분 1차 항암 후에는 뭉텅뭉텅 빠지는 머리카락을 견디지 못해 삭발을 한다. 그래서인지 민머리의 환우들이 적지 않았다. 나는 항암을 하지 않아 머리카락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염색을 못 해 흰머리가 반 이상 올라와 거울을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는데, 그 머리조차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이 얼마나 상대적인 행복인가.
나는 한여름을 나면서 나도 머리를 확 밀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관리의 수고로움에서 벗어나 보고 싶은 마음, 병을 핑계로 평생 한 번쯤 삭발을 해보고 싶은 마음. 특히 나의 눈길을 자꾸 끌던 밤톨같이 매끈하고 반지르르한 M동생의 민머리를 볼 땐 더 그랬다. 하지만 그 바람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상실의 상징일 그 선택을, 호기심처럼 말하기가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암을 진단받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며칠을 울었다는 이, 화가 났다는 이, 우울해 아무 말도 못 했다는 이, 원인을 파헤치다 암 전문가가 되어버린 이… 나는 검사 결과도 혼자 보러 갔고, ‘암’이라는 단어 앞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초기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같은 케이스의 환우가 수술을 마치고 퇴원 당일까지 눈물을 훔치던 모습과 비교하면 나는 지나치게 담담해 보였을 것이다.
걱정을 미리 사서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걱정의 대부분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걱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지를 경험했기에. 그래서 남들 눈에는 초긍정 대왕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상피내암인 줄 알았다가 유방암 1기가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기에 발견하여 완치율이 높아 다행이었고,
퇴직 후라 동료에게 민폐 끼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었고,
아이가 성인이라 나의 손길이 필요 없어 다행이었고,
남편이 운전이라도 도맡아 동행해 줄 수 있어 다행이었고,
부모님이 안 계시니 걱정 끼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고,
치료를 견딜 수 있는 나이와 체력이 있어 다행이었고,
보험이 있어 치료비 걱정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었고….
한마디로 다행 투성이었다. 그래서 감사했다.
억울하거나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별것 아니다”라고 설명해야 했다. 그들은 “생각보다 네가 밝아서 안심”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요양병원에 와서야 알았다. 방사선 치료만 끝나면 모든 게 마무리될 거라 여겼던 내 생각이 얼마나 단순 무지했는지.
수술한 쪽 팔은 채혈, 혈압 측정, 주사를 피해야 하고 무거운 물건도 들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들었지만, 몇 달만 조심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림프부종으로 고생하는 환우를 보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수술 후 10년이 지나서도 갑자기 부종이 오고, 한 번 생기면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고 했다.
수술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것도 평생을 전제로 한 시작이라니. 특히 유방암은 전이나 재발 환자들이 유독 많다는 사실도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환우들이 자율적으로 결성했던 새벽 국민체조 팀만 보아도 각자의 사연이 다 있었다.
숨이 차 병원에 갔다가 폐암 4기와 뇌 전이를 진단받은 갑장,
10년 전 유방암을 겪고 다시 폐암 수술을 한 70대 언니,
한 부위를 세 번이나 수술하고도 밝음을 잃지 않는 40대 동생,
두 번째 수술 후 입원하여 “살라고 용을 쓰는 것”이라며 하루 세 번 어싱을 하는 70대 언니,
항암을 받으면서도 체조 리더를 맡아 씩씩하게 앞장서는 50대 동생….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가 자기 몫의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었다. 즐겁게 살자 다짐하다가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움츠러든다. 나의 경우인 호르몬 양성 유방암은 진행 속도가 느려 10년, 20년 뒤에도 전이와 재발이 잦으며 림프절을 통해 이동하기 쉬워 주로 뼈, 폐, 간, 뇌 등으로 전이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요양병원 입원 시 상담부장이 “1~2기 초기 환자들이 방심하기 쉽다”라고 했던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다행이라고 말한다. 유방암은 다른 암에 비해 치료 약제가 매우 다양하고 설령 전이나 재발이 되더라도 표적 치료, 면역 항암제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병을 조절하며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사는 환우들이 많다고 한다. 정기적인 검진만 잘 받는다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다행은 방심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더 조심하며 살아가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감사는 끝났다는 선언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성실히 지키겠다는 다짐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