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귀환

역시 집이 최고야

by 스카이블루 킴

점심까지 챙겨 먹고 요양병원을 나왔다. 오전에 한방치료를 받던 H 언니가 먼저 퇴원했고, 곧이어 나까지 나가게 되면서 우리 방은 거의 해체 수준이 되었다. 간호사는 이렇게 동시에 퇴원해서 방이 비는 경우는 드물다며, 우리 보고 미리 짰냐고 웃으며 물었다. 사실 그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H 언니는 내가 퇴원하면 혼자 병실에 남아 있기 싫고, 수술 부위 상처도 제법 잘 아문 것 같다며 일단 퇴원했다가 방사선치료가 시작되면 다시 입원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퇴원 시점은 자연스럽게 맞춰졌다.


우리는 26일을 함께 지냈다. 그중 20여 일은 불면증과 우울증이 심했던 M 언니까지 함께한 시간이어서, 말 그대로 함께 버틴 날들이었다. 각자의 병은 달랐지만, 밤마다 이어지던 한숨과 뒤척임은 닮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노력 없이도 마음이 가까워졌고, 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가 되었다. 정들었던 환우들과 “꼭 다시 건강해지자”라는 말로 인사를 나누고, 의료진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퇴원은 외출이나 산책과는 분명히 달랐다. 병원이 감옥은 아니었지만, 한정된 자유 안에서 지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나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던 모양이다.



캐리어를 끌고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기분이 묘하게 당당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날의 나는 꽤 자유로웠다.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퇴원 약을 전리품처럼 안고 나왔다. 남편은 두 팔을 벌리고 환영 인사를 했다. 원래 이런 과장된 표현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혼자 많이 외로웠던 모양이다. 시장에 다녀온 엄마를 기다리다 뛰어나오는 아이처럼 보였다.


오래간만에 만난 경비 아저씨는

“이번엔 멀리 여행 갔다 오셨나 봐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눈웃음으로 대신하며 마음속으로 답했다.

‘네,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아들이 조퇴해서 온다고 했다. 퇴원한 엄마에게 저녁 한 끼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나. 이건 돌연변이다. 남편을 전혀 닮지 않았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가 보니, 한 손에는 꽃을, 다른 한 손에는 음식 재료가 든 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스윗하던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말해 나는 결혼생활 내내 이벤트라는 걸 거의 모르고 살았다. 그렇다고 크게 불만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이렇게 챙겨주는 경험을 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작은 이벤트 하나가 사람 마음을 얼마나 단번에 흔드는지 말이다.


옷만 갈아입고 부엌으로 달려간 아들은 남편에게 보조 셰프를 요청했다. 한 시간쯤 지나 두 남자가 차린 식탁에는 제법 그럴싸한 저녁상이 놓여 있었다.


아들은 유튜브에서 암 환자 식단을 검색해 부추 삼겹말이와 된장국을 만들었고, 남편은 조기를 굽는 임무를 맡았다. 결과는 예상보다 훌륭했다. 다만 조기는 원래의 형태를 잃고 뼈와 살이 완벽히 분리된 채 접시에 올라와 있었다. 남편은 내가 먹기 좋으라고 일부러 손질했다며 실실 웃었다, 스테인리스 팬 예열에 실패했을 거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면서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고, 시도 자체에 의미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정말 먹기는 편했다.




요양병원에서 나는 ‘환자’였지만, 집에서는 다시 ‘엄마’이자 ‘아내’였다. 그리고 그 역할이 이렇게 반갑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조금은 흐트러진 식단, 형태를 잃은 조기, 어설픈 농담까지도 다 사랑스러웠다.


역시 집이 최고다.

병원 문을 나서던 순간에는 개선장군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이 식탁 앞에 앉아 보니 나는 장군이 아니라 왕비에 더 가까웠다. 거창한 궁전은 없어도 나를 위해 애써준 두 남자가 있으니.

이 정도면, 왕비의 귀환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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