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분야의 명의를 찾아라

'0'기가 아니라 '1'기 입니다.

by 스카이블루 킴

병은 자랑하라는 말이 딱 맞았다.

덕분에 병원에 대해 문외한인 나도 유방암 분야의 명의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취합된 정보에 따르면 부산시 내에 있는 병원 3군데가 후보로 올랐다. 아무리 0기라도 안심할 수 없다며 서울 병원을 권하는 사람도 있었고, 남편 역시 서울의 S 병원을 추천했다.


서울 S 병원은 11월 말쯤 상담이 가능했고, 상담 후 1달 정도 지나야 수술하게 되는 관례에 따른다면 실제 수술까지는 7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단 ‘보험용’으로 예약했다. 부산 쪽 병원들을 다시 수소문하던 끝에, 처음 예약에 실패했던 희망병원(가명)으로 다시 좁혀졌다. 희망병원은 유방암 수술 사례가 많은 병원으로, 해당 의사가 팬덤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팬덤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그 의사라면 믿고 맡긴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의사로 수술이나 치료 결과가 좋다는 경험담이 쌓여서 형성된 것이 아니겠는가.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맘모톰 수술했던 병원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간호사는 의사 선생님이 세미나 중이라며 알아보고 연휴 다음 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마침 어린이날이 끼어 있는 연휴였다.


그렇게 마음 불편한 연휴를 보내고 5월 7일, 드디어 전화가 왔다. 9일로 예약을 잡아 두었으니 상담받으러 가라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예약받지 않는다던 병원에서 어떻게 가능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따질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이 또한 내겐 행운이었다.


희망병원 유 교수(가명)와의 상담을 위해 내원했다. 예약제가 무색할 만큼 병원 안은 보라색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전날 간호사가 예약 시간보다 절대 일찍 오지 말라고 전화까지 걸어 당부한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바로 옆에 또래로 보이는 환우가 말을 걸어왔다. 자신은 유방암 2기로 항암을 먼저 받아 암 크기를 줄인 뒤 부분절제 수술받았고, 오늘은 약 처방을 받기 위해 한 시간째 대기 중이라고 했다. 검은 가발 사이로 흰 머리카락이 삐죽 나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의사에 대한 신뢰가 남다르다는 것, 대기 시간이 길어도 기꺼이 감수하는 모습에서 유 교수에 대한 팬덤을 느끼게 했다.


나 역시 도착한 지 1시간이 지나 정오를 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휴진 없이 진료는 계속됐다. 의사도, 간호사도, 환자들도 모두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의사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환자를 본다는 건, 그만큼 환자를 놓지 않겠다는 뜻 아닐까. 상담이 2~3분 만에 끝나는 면담이 아니라, 환자의 불안한 마음마저 풀어주려는 노력으로 읽혀서 오래 기다리는 시간도 그리 짜증스럽지 않았다. 어쩌면 나 역시 비슷한 대우를 받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방암이라는 공통분모 덕분에 이름도 모르는 옆 환우와 금세 친해졌다. 그는 항암 시절의 어려움을 꽤 리얼하게 쏟아냈다. 그러다 대뜸 몇 기냐고 묻기에 ‘0’기라고 했더니, 항암을 안 해도 되니 걱정하지 말라며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경험이 쌓이면 환자도 반쯤 의사가 된다더니, 정말 그런 모습이었다.


요즘은 의사 노릇 하기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덕분에 의료지식마저 쉽게 접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셀프 진단하고 오는 환자, 경험으로 반은 의사가 되어 버린 환자, 자신이 습득한 지식과 다르면 의사를 불신하는 환자까지…. 그 피로도가 오죽할까 싶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내 이름을 불러, 유 교수님 방으로 남편과 함께 들어갔다. 교수님은 그림까지 그려가며 나의 상태를 설명하셨다.


“0기로 알고 내원하셨겠지만, 조직검사 슬라이드에서 미세 침습이 발견되어 ‘1’기라고 봅니다. 정확한 것은 수술 시 떼어낼 조직검사 결과로 알 수 있습니다.”


깜짝 놀라는 나에게 병기는 달라졌지만, 수술 방법이나 치료 방법 등 크게 다를 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수술 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20년 전 아버지를 암으로 떠나보낸 기억 탓에 ‘암’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트라우마였지만,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기다리기로 했다.


“착한 농부가 되세요. 그러면 제일 잘 낫습니다.”

언젠가 의사에게서 들은 말이다. 깊이 파고들어 따지기보다, 맡기고 믿고 따라가다 보면 잘 낫는다는 뜻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나도 착한 농부가 되기로 했다. 전적으로 의료진을 믿고 나를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유방암 분야의 명의는 신의 손을 가진 의사가 아니라, 나와 인연이 닿아서 내가 수술받을 의사라고 믿기로 했다.


화요일 연재
이전 04화병을 숨기지 않아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