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숨기지 않아야 하는 이유

나, 유방암이래!

by 스카이블루 킴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서울의 빅5 병원도 아니고, 부산의 대학병원도 아닌 종합병원에서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상황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올해 예약이 다 찼다는 것. 당시 의료 파업으로 서울에서 수술하려고 했던 환자들이, 파업이 없던 비교적 작은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0기’라는 말에 암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도 사실이다. 진단을 받고도 며칠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낸 것이 뒤늦게 후회로 밀려왔다. 이러다 자칫 수술을 못 하는 건 아닐까, 시간을 끄는 사이 병이 더 진행되는 건 아닐까 하는 조급함이 생겼다. 더군다나 나는 병원 정보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결국 마당발에다 정보력이 좋은 친구, 남자지만 10년 전 유방암 수술을 했던 지인, 의료계에 종사하는 아들을 둔 지인, 딸의 친구까지 인맥을 총동원해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암밍아웃’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여기저기 병원을 알아보며 내가 스스로 소문을 낸 셈이었다. 아파보니 절실히 알게 되었다. 병원에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런데 나는 의료계 쪽으로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무렵 나는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블로그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특히 이웃님들과 소통할 때면 도파민이 분출되는 게 느껴졌다. 짬만 나면 태블릿 앞에 앉아 블로그를 했다. 일상이 주제인 나는, 유방암 이야기를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오래 고민했다. 결국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의 유방암 이야기를 포스팅으로 써버렸다.


발행 버튼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내 글은 나의 가족도 자세히 보지 않는다. 그래도 반드시 한 명에게는 도움이 된다”는 블로그 멘토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웃님들의 위로와 격려, 심지어 기도까지 쏟아졌다. 댓글에 답글을 달며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글 속에서 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떤 이웃님은 자신의 병력을 꺼내 보이며 위안과 용기를 주었고, 의료계에 종사하는 이웃님은 전문적인 설명으로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또 어떤 분은 내가 긍정적이고 씩씩하다고 말해 주었고, 나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괜히 아프다는 이야기를 꺼내 민폐를 끼친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도 늦은 밤까지 답글을 달며, 나는 이상하게도 행복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유방암을 0기에 만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 준 사람 또한 블로그 이웃이었다. 결국 병을 드러냈기에 얻은 행운이 아니었을까.


진단부터 수술, 방사선 치료, 암 요양병원 입·퇴원까지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고, 블로그에 공개했다. 어쩌면 나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주변에서 건네줄 위로와 도움을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아픈 사실을 알리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숨기고, 치료가 끝난 뒤에야 조심스레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유를 물으면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괜히 동정받기 싫어서”, “소문날까 봐”라는 답이 돌아왔다.


세계적인 암 전문 병원인 미국 MD 앤더슨에서 30여 년 근무했던 김의신 박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암 진단을 받아도 주변에 알리기를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고. 미국에서는 병을 공개하고 함께 대처하는 문화가 익숙한 반면, 한국은 여전히 병을 숨기려는 분위기가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아픈 사실을 알리는 것이 오히려 나와 주변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다.


물론 알린다고 해서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시선이나 불필요한 소문에 시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병은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다. 아픔을 나누면 무게가 줄고, 두려움도 옅어진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혹시 지금 당신이 아프다면,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는 꼭 알리라고.


아픔을 숨기면 상처가 되고, 나누면 힘이 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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