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과 한판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정말 더는 못 참겠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가 있다면 아직 더 참아야 할 때다. 이때 한판을 벌이겠다고 달려들면 백전백패다. 여하튼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상대가 제 꾀에 걸려 스스로 넘어질 때를 기다리는 것, 다른 하나는 상대가 꼼짝도 못 하게 몰아붙이는 것이다.
#1
묘하게 신경 쓰이는 팀원이 있다. 감춰진 의도는 명백히 해로운데 짚고 넘어가자니 애매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누구라도 힘들다. 하지만 해결 방법은 딱히 없다. '우리 얘기 좀 하자.'라든가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라든가 하는 식으로 어설프게 달려들었다간 이도저도 아니게 되거나 오히려 망신만 당한다. 이럴 때는 그냥 모른 척 참아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제 발등을 찍기 마련이다. 내 평생 저 사람이 망하는 꼴을 볼 수 있을까 싶은데, 그걸 진짜 보게 되는 일이 생각보다 흔하다. 그러니 기다려라. 가만히 두고 보면 상대는 절제를 잃게 되고 그러다 삐끗하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이와 관련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만약 그런 경험이 없다면 그건 당신이 충분히 참지 않았다는 얘기다.
나를 증오하는 팀원이 있었다. 그는 갈등 중재에 능한 사람이었다. 팀장과 팀원 사이의 갈등을 가운데서 원활하게 조정하고 팀장의 의지처가 되어주는 좋은 품성을 갖고 있었다. 팀원과 갈등을 겪고 있는 팀장 입장에서는 너무 고마운 팀원이다. 문제는 우리 팀에는 팀장과 팀원 사이의 갈등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팀장인 나는 그에게 의지처 역할 대신 업무 역량을 바랐지만 그는 그 점에서 좀 약했다. 그렇다고 내가 50이 훌쩍 넘은 그를 타박하거나 압박한 적은 없다. 그런다고 바뀌기엔 나이만큼 쌓인 그의 고집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그는 내가 자신을 심적으로 의지하지도 않고 업무적으로는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금세 알아차렸고 역할이 없다 싶은 그는 자신을 채근하는 대신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 쌓인 원망을 내게 투사하는 선택을 했다. 그는 내 험담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고 사내 익명게시판에도 나에 대해서 '중요한 일을 안 하고 있다. 어용이다. 전문성이 없다.' 같은 평가성 게시물을 수시로 올리곤 했다. 그의 이 같은 행동을 나는 2년간 모른 체했다. 시비를 가린다든가 어떤 식으로든 상대를 자극한다든가 하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2년이 지나서 그가 다른 팀으로 가게 됐을 때 속으로 좀 힘든 곳으로 발령 나길 바랐는데 진짜 말도 안 되는 팀으로 발령이 나는 걸 보고 2년간의 고충이 말끔히 씻기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본인보다 열두 살 어린 팀장 밑으로 발령을 받았고 문서 작성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업무를 맡게 됐는데, 문서 작업은 그의 최대 약점이라서 앞날이 괴로울 게 훤히 보였다. 인사 공지를 보고 충격을 받은 그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의 당황한 표정과 혹시 내가 뒤에서 작업을 한 건 아닐까 의심하는 눈초리까지 생생하다.
나를 만만하게 보는 팀원이 있었다. 사무실이 떠나갈 듯 큰소리로 내게 대드는 팀원이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다음 챕터에서 적도록 하고, 여기서는 그가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적고자 한다. 나와 일한 지 8개월쯤 됐을 때 경찰로부터 그가 만취 상태에서 택시 기사를 폭행해서 입건됐다는 통지를 받았다. 택시 기사가 크게 다쳤고 합의가 안 되고 일이 커지면서 그는 해임됐다.
이외에도 일일이 적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례가 있다. 팀원과 한판 하고 싶어도 일단 참아라. 두고 보면 상대는 더욱 기세등등해질 것이고 그렇게 절제와 성찰이 없이 지내다 보면 자승자박 '지팔지꼰(지 팔자 지가 꼰다는 일종의 밈)'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 그 꼴을 보는 걸로 묵은 체증을 씻어낼 날이 올 것이다.
#2
하지만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내 기준에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다. 이럴 때는 부딪혀야 하는데 어설프면 안 된다. 상대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몰아붙이되 나는 멀쩡해야 한다. 그러자면 일단 오랫동안 참아야 한다. 일종의 '원기옥'을 모으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원기옥을 터뜨릴까 말까, 지금인가 아닌가 망설여진다면 아직 때가 아니다. 더 참아라. 참다 참다 아예 아무 생각이 안 들 만큼 원기옥이 모였을 때, 그때 부딪혀야 한다.
위 챕터에서 말한 나를 만만하게 보는 팀원을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예로 들어보겠다. 그는 나와 일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사무실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내게 대들기 시작했다. "저는 업체에 그런 무리한 요구는 못 합니다! 못 한다고요! 하려면 팀장님이 직접 하십시오!", "제가 오늘 정시 퇴근해야 한다고 아침부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제 와서 그걸 하라고 하면 어떡합니까! 전 못 합니다.!" 나는 일단 "알겠다."라고 하며 상황을 넘겼고, 그는 한두 시간 후에 내게 와서 "아까는 죄송했다. 팀장님께 그러면 안 되는 건데."라며 사과를 했다. 나는 두 번까지는 웃으며 사과를 받아줬다. 다만, 그가 뭔가 변명을 길게 하려는 건 차단했다. 변명을 들어주게 되면 상대는 자신의 무례를 내가 진짜 양해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설명 안 해도 되고요. 됐어요."라고 웃고 끝냈다. 그런데 세 번째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외근 중에 사무실에 있던 그에게 전화로 업무를 지시하다가 또 사달이 났고 현지에서 퇴근한 나는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화가 났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차분하고 진지하게 생각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화가 났고 '더 이상 생각 말고 그냥 내키는 대로 하자.'라고 정리하고 출근을 했다. 일단 그의 인사를 안 받았다.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러자 그는 메신저로 '회의실에서 잠깐 얘기하자.'라고 거듭 청했다. 회의실로 들어간 나는 원기옥을 터뜨렸다. 본 적 없는 나의 화력을 본 그는 얼어붙었다. 큰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차갑고 단호했는데, 계획한 게 아니었다. 너무나 화가 난 상태이다 보니 엄청난 몰입도로 말이 술술 나왔다. "이거 처음 아니죠. 그동안 넘어갔더니 계속해도 되는 줄 아셨어요? 사무실에서 누가 00님처럼 감정 다 드러내고 일합니까? 그리고! 00님은 대안 중심적으로는 말 못 합니까? 나 퇴근해야 한다, 나는 못 한다고 하면 끝입니까? 팀장이 여기까지 해 주면 여기서부터는 내가 커버하겠다, 이런 식으로는 말 못 합니까?"부터 해서 "부사수를 붙여 달라고요? 못 합니다. 사람 없습니다. 00님 계정의 외부 망 접근권한을 열어 달라고요? 그걸 왜 제가 합니까. 00님이 전산팀에 직접 요청하면 되는 일입니다."까지 그가 하는 모든 변명과 변명조의 부탁을 차단했다. 마지막까지 괜찮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네! 죄송할 일입니다! 다시는 그러지 마십시오!"라고 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사실 나는 이 푸닥거리를 하고도 그가 제 버릇을 못 고칠 줄 알았다. 하지만 이후 6개월을 조용히 지내더니 밖에서 일을 치고 해임됐다.
직접 부딪힐 때는 정말이지 '기세'가 100%인데 기세는 어영부영한 마음가짐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멈칫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다시 #1로 돌아가 참고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