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상황 판단이 안 되는 이유

by 하나둘셋

내가 보기엔 100% 확실한데 본인들은 나와 정 반대의 판단을 하고 애먼 짓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자신의 특수성에 대한 집착과 결과를 놓고 끝내 버리지 못하는 희망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아닐 것 같다고?(이게 바로 자신의 특수성에 대한 집착 내지 자만이다.) 그렇지 않다. 누구나 피하기 힘들다. 그런데, 제대로 된 상황판단은 자존감을 높여주기 때문에 중요한 것 같다.


일도 잘하고 처신도 잘해서 본부장의 총애를 받는 직원이 있었다.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도 선정됐고 연말 승진도 결정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고충 민원이 정식으로 제기됐다. 그는 평소 아랫사람들에게 다소 거칠게 말하는 흠이 있었는데 그게 발목을 잡았다. 고충 민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피해자들도 나서면서 일이 커졌다. 하지만 그 수준이 징계를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민원을 제기한 직원들의 근무 태만과 비리까지 같이 드러나면서 모든 건 없었던 일이 됐다. 그가 민원에 대해 소명하는 과정에서 내가 약간의 도움을 줬고, 일을 마치고 나서는 "앞으로 말조심하고, 해외 연수랑 승진은 물 건너갔으니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지낼 것"을 당부했다. 나는 고충 민원이 유야무야 되기는 했지만 직원들이 주장한 폭언이 없었던 일은 아니고 본부장은 그러한 민원이 제기된 사람을 감싸다가 본인까지 곤란해질 것을 우려할 거라는 생각에 연수와 승진은 불가능할 걸로 봤다. 하지만 그는 민원 자체가 음해였다는 것이 밝혀졌고 해외 연수는 시험을 통해 선정된 것이며 승진 역시 본부장님이 외면할 리 없다며 펄쩍 뛰었다. 그 믿음이 하도 강경해서 나는 '내가 오버하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내 예상과 같았다.


지역 발령을 받게 된 직원은 부사장과 사장 면담을 잇달아하면서 집안에 돌봐야 할 환자가 있다는 등의 가정사로 읍소를 하거나 이의신청 내지 휴직을 하겠다는 등의 협박을 하면서 지역 근무를 안 할 방도를 찾았다. 친구는 적극적으로 소명하면 발령이 취소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업무 능력에 대한 사장의 신뢰가 방패가 되어줄 거라고 믿었다. 이 친구가 지역 발령을 받게 된 맥락이 있는데, 그 맥락을 보면 이 친구의 지역 근무는 절대 피할 수 없다고 봐야 맞았다. 나는 구차하게 굴지 말고 의연하게 인사 방침을 따르라고 했지만 친구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역시, 결과는 내 예상과 같았다.


계약 기간 종료를 앞둔 친구는 무난하게 계약이 연장될 걸로 기대했다. 정부기관이라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아서 평소 같으면 계약 연장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정권이 바뀌고 다른 부처도 전 정권에서 만들어진 계약직 자리를 다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친구와 생각이 달랐다. 그러나 내 판단을 친구에게 말하지는 못했다. 내가 말한다고 달라질 게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결과는 이번에도 내 예상과 같았다.


내가 유독 상황 판단에 능한 게 아니다. 사람은 자신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와 우상화, (피해 상황에서의) 무결화를 피하지 못하곤 한다. 전체적인 상황이나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살피기보다는 자신과 관계된 특수한 상황에만 집중하기 마련이다. '나랑 본부장의 관계가 그렇게 쉽게 나 몰라라 할 관계가 아니야.', '사장이 전에 나를 공개적으로 칭찬했었어.', '설마 나 같은 말단 직원까지 건드리겠어?' 같은 생각이 판단을 좌우한다. 그 근본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작동하고 있다.


자신을 객관화하고 사회적 맥락과 인간의 보편성을 고려하며 상황 판단을 한다는 것은 '지혜'에 관한 영역인 것 같다. 제대로 된 상황 판단 속에서 나의 처신이 달라지고 그런 사례가 쌓여서 나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걸 느낀다. 그래서 늘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게 된다.



cdd20-man-6138374_1280.jpg Image by Hello Cdd20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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