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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둘셋 May 20. 2024

팀장이 제 마음 편할 길부터 찾아?

"듣고 보니 팀장님 말씀이 맞네요" 같은 대답을 기대하는 거야?

팀원 둘은 사이가 아주 나빴다. 둘 다 조용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라서 둘의 사이가 나쁘다는 걸 대부분이 모르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사실을 모르고 둘을 팀원으로 받았다. 


다행히 둘은 일을 하면서는 아무 문제없는 듯 조용했고 팀원들도 둘 사이를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만, 나는 좀 괴로웠다. 둘 사이가 괜찮았다면 감당하지 않아도 됐을 일들을 팀장인 내가 감당해야 했고, 상하반기 면담 때면 둘은 내게 서로를 향한 문제 제기를 하며 팀장이 자신들의 힘겨운 상황을 정리해 줄 것을 요구하곤 했다. 둘은 늘 '걔를 왜 그냥 두는지, 팀장님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그런 항의 내지 공격을 받으면 나도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는 둘 모두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고 이렇다 할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무슨 얘기인지 잘 알고 있다. 팀장으로서 내 생각이 있기는 하지만 팀원과 나눌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 미안하게 생각하며 그럼에도 지금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말만 했다. 


과거의 나였다면 팀원과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긴 얘기를 했을 거다. 그리고 팀원의 고충을 경청하는 훌륭한 팀장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며 뿌듯해했을 거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사실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불만을 제기하는 팀원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려는 심산이 더 컸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대화를 통해 내가 목표했던 것은 '듣고 보니 이해가 되네요, 팀장님도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팀원의 대답이었다. 얼마나 허황된 바람인가.


대화는 실컷 했는데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게 없으면 어떤 팀원이 좋다고 하겠는가. 술 마신 날은 알겠다고 하더라도 며칠 지나면 팀원은 또 불만을 제기할 게 분명하다. 그뿐인가. 대화 과정에서 팀장이 말을 더 많이 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두둔하거나 평가성 발언을 했다가 탈이 나기도 쉽다. 이런저런 경험 끝에 나는 어떤 경우든 내 입장을 설명하거나 상대와의 관계를 호전시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조직과 업무 관점에서 '위험 관리'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조용히 상황을 관찰하고 판단을 하되 그 판단을 직원들에게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으며 나름의 대응을 하곤 한다.


이러한 결론은 사이가 나쁜 직원 둘의 상황을 풀어가는 데도 똑같이 적용됐다. 


둘이 싸운다니 어린 직원들인가 싶지만 아니다. 둘은 모두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베테랑들이고, 그런 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업무들을 맡고 있었다. 또한, 둘 모두 오랜 경험에서 만들어진 자기들만의 완고한 업무 방식이 있었고 자존심도 무척 강했다. 둘이 서로를 향해서 제기하는 불만의 내용은 일면 이해는 됐지만 내 기준에 어느 한쪽이 100%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들이었다. 둘의 요구사항은 업무를 바꿔주든가 상대를 교정시켜 달라는 것이었는데 업무 변경은 팀 사정 상 여의치 않았고 둘의 갈등 때문에 업무를 조정해 준다면 다른 팀원들도 똑같은 요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인간 개조'는 나 스스로도 못하는데 누굴 교정할 수 있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둘과 함께 일하는 2년 간 내가 목표한 것은 팀 내부의 '예민도'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내게는 둘의 갈등이 팀 전체의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둘이 업무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없도록 만들고 부득이 함께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내가 가운데서 종합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식이든 단 한 번도 둘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냥 모두가 '아무 일 아닌 듯, 아무 일 없는 듯' 느끼도록 하는 게 나의 목표였다. 


그렇게 사이가 나쁜 둘과 함께 꾸역꾸역 2년을 보내고 있던 중에 내 위에 국장이 바뀌게 됐다. 갈등 관계에 있던 팀원 중 한 명이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새 국장에게 면담을 신청해서 그간의 고충을 얘기한 모양이었다. 팀원이 국장에게 제기한 고충의 내용에는 팀장인 나의 '방관'도 포함돼 있었을 터다. 국장은 나를 불러서 에둘러 질책을 하고는 자신이 직접 그 둘을 데리고 술 한 잔 하면서 중재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시라고 했다.


그런데 그 바로 며칠 뒤, 갈등 관계에 있던 팀원 둘이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한참을 싸우는 일이 벌어졌다. 워낙 조용했던 두 명이 돌변해서 잡아먹을 듯 싸웠으니 큰일은 큰일이었다. 마침 나는 출장 중이라 자리에 없었는데, 다른 팀의 팀장이 내게 전화를 해서 "너네 팀 지금 난리 났다. 다른 팀 사람들까지 쫓아가서 겨우 말렸다."라고 알려줬다. 다음날 다른 직원 한 명이 너무나 심각한 표정으로 '사건의 전말'을 내게 알려줬지만 나는 이번에도 '아.. 그랬어요? 지금은 괜찮은 거죠?'라고 하고는 더 이상 아는 체하지 않았다.


안 봐도 빤했다. 국장은 한쪽 말만 듣고는 갈등 관계에 있는 다른 팀원을 불러서 상황을 묻고 내게 했던 것처럼 타일렀을 게 분명했다. 나는 국장의 말을 애써 마음에 두지 않았지만, 다른 팀원은 상대가 자신을 국장에게 '일러바쳤다'라고 생각했을 것 아니겠나. 그렇게 이를 갈고 있다가 사소한 업무를 두고 서로 공격하면서 싸움이 터진 것이었을 터다. 


그 일 이후 '내가 해결하겠다.'라며 호기로웠던 국장은 더 이상 둘의 문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둘을 데리고 하겠다던 '술 한 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국장이 둘의 갈등에서 손을 뗀 후 팀은 다시 일상을 찾았다. 



동학농민운동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녹두꽃>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백이강(조정석)은 동학군 별동대장인데, 별동대원 한 명이 큰 죄를 지어서 군법에 회부되는 일이 발생했다. 백이강은 전봉준(최무성) 장군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제가 관리를 못한 책임이 크니 제가 대신 벌을 받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때 전봉준이 호통을 친다. "못난 놈 같으니. 명색이 별동대 대장이라는 자가 제 마음 편할 길부터 찾는단 말이냐! 전장에서 병사는 피 흘리며 죽고, 장수는 피가 말라죽는 것이다!"



팀장이 감당해야 할 게 뭔지를 잘 표현한 대사라는 생각에 드라마를 보면서 감탄했다.


나는 사이 나쁜 두 명과 함께 일하는 동안 피가 마를 정도는 아니어도 속 타는 심정으로 많은 걸 감당했다. 평소에는 그나마 어려움이 덜하지만 내가 오해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나 자기변호를 하고 싶을 때 말을 절제하고 나의 판단을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이번의 경우도 팀원 한 명이 새로 온 국장에게 고충을 얘기한 걸 알았을 때, 국장에게 하고 싶은 천 마디 말을 참고 아무런 티를 내지 않았다. 국장을 찾아간 한 명을 불러서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고, 다른 한 명에게 가서 '걔가 그랬더라, 너도 알아둬라.' 같은 얘기도 하지 않았다. 국장이 다른 직원까지 불러서 상황을 알아보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역시 모른 체했다. 속은 탔지만 말이 말을 만들고 모두가 상황을 주시하며 예민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수는 피가 말라죽는다.'라는 드라마 대사가 와닿았던 것 같다.


팀장으로서 어떤 문제를 관리해야 할 때, 내가 병사가 되려는 심산인지 장수가 되려는 결심인지 따져봐야 한다. 뭐가 됐든 내 마음 편할 생각을 하는 건지 정말 문제 상황을 관리하고자 하는 건지를 중심에 두고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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