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가혹한 걸까

by 하나둘셋

첫 직장에서 만나 30년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선배가 있다. 나보다 예닐곱 살이 많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유쾌하며 배울 점도 많은 분이다. 정도 많고 세심해서 뭐라도 챙겨 주려고 하고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게 항상 느껴진다. 그런데, 2년 전 만남에서 굉장히 불쾌하고 모욕적인 말을 말을 들었다. 그런 말이 나올 만한 상황과 맥락도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었고 그런 말을 한 선배의 의도도 양해할 만한 여지가 있었지만, 그런 말을 들은 나는 너무나 황당했다. (객관적으로 문제적 발언이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렇게 느낀다는 게 중요하다.)


그 일로 인연을 끊을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또 보자고 연락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선배는 실수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만회를 하기 위해 애쓰는 게 보였다. 성가실 정도다. 그런데 나는 마음이 풀리지를 않는다. 30년간 내가 받은 게 훨씬 많은 게 사실이고 그 시간 동안의 선배 진심도 아는데, 그 딱 한 번의 실수가 털어내 지지를 않는다.


수시로 그날 일이 떠오르고, 그때마다 욕설이 튀어나온다. 그러면서 '나는 왜 이렇게 가혹하게 구는 걸까. 단 한 번일 뿐인데. 더구나 상대가 자책하고 있고 최선을 다해 미안함을 표하는데. 왜 나는 단 한 번도 안 된다고 이러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실수였어."

"응. 하지만 넌 이미 그 일을 했어."

"후회해. 미안해."

"그런 건 나와 상관없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중요하지 않아. 네가 이미 그런 일을 했다는 게 중요하고, 그런 일을 했다는 건 넌 그런 사람이라는 의미야."


친구와 나눴던 대화다. 친구가 싫어하는 일을 했고 친구가 그걸 알았다. 나는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애썼지만 친구는 냉정하고 가혹했다. 친구로부터 '괜찮아, 다시 안 그러면 되지.'라는 말을 끝내 듣지 못한 채 헤어지고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못되고 가혹하며 저만 잘났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내가 한 행동은 잘못된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이었고 내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한참 지나서 그때 일을 생각해 본다. 친구는 계속해서 후회와 사과의 마음을 표시하는 내게 "후회한다고? 근데 그런 일을 했잖아. 그렇다는 건 넌 그런 사람이라는 의미야."라고 했는데, 맞다. 난 그런 사람이다. 실제로 나는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친구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바람이 컸다.




선배와의 일을 곱씹게 될 때마다 '생각해 보면 선배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 단지 내 앞에서 좀 조심했던 거지. 그래서 나도 잊고 있었던 거야. 근데 사람이 어디 바뀌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과거 친구와의 일이 떠올랐다. 친구의 가혹함에 정말 마음이 안 좋았고 친구가 미워졌던 경험.


그때를 돌아보니 지금 선배에 대한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정리가 됐다. 나는 친구가 말한 '그런 사람'이 맞다. 실제로 내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딱히 후회도 없었다. 하지만 친구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다. 오래된 관계에서 그 바람은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는 거 아닐까.


관계의 회복과 실수의 만회를 위한 선배의 마음이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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