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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오페 May 03. 2023

고흐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오베르(Auvers) 가는 길

오베르(Auvers) 가는 길     


파리를 벗어난 A15 고속도로는 북쪽으로 내달린다.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빛 하늘에서 햇빛이 와르르 쏟아진다. 눈이 부시다. 차창 밖,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으로 고개를 돌리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노란색은 고흐가 가장 사랑한 색이었다. 고흐가 한때 머물렀던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도 해바라기 밭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곳이었다. 이렇게 짙은 노란빛 물결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자, 그를 미치게 만든 광기의 원천이었다.     


오베르 쉬르 우와즈로 가는 길이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0킬로미터 달리면 나오는 작은 마을. 차로 30분 안에 닿는다. 유학 생활을 할 때도, 파리 특파원으로 있을 때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바람처럼 차를 몰아 이곳을 찾았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는 ‘우아즈 강가에 있는 오베르 마을’이란 뜻이다.

우아즈 강은 프랑스 여느 강들처럼 작다. 파리의 센 강이 한강에 비하면 개울에 불과한 것처럼 유럽의 강들은 대부분 강폭이 좁다. 나는 주말이면 우아즈 강변의 작은 오솔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조깅을 했다.      

 

우아즈 강가에 깃든 오베르 마을은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시간은 멈추어 있다. 이 작은 마을이 세상에 알려진 건 어느 가난하고 불행한 화가의 영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37살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가 생애 마지막 70일을 살았던 곳이 오베르였다.      


프로방스 지방의 아를(Arles)에서 고갱과 다툰 뒤였다. 스스로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른 고흐는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가 오베르로 거처를 옮긴 것은 유일한 후원자이자 동생인 테오(Théo)의 권유 때문이었다.     


“오베르는 정말 아름다워... 정말로 그림 같은 전원이 펼쳐진 진정 아름다운 곳이야”라고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을 정도로 반 고흐는 오베르를 좋아했다. 오베르는 고흐의 최후의 피안(避岸)이었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70일간 고흐는 무려 80여 점의 유화를 완성한다.     


"붓이 내 손가락에서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면서 미친 듯이 그린 그림이었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 자신의 가슴에 권총을 겨눴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고흐의 마지막 다락방     

오베르 시청 바로 앞에 라부 여인숙(Auberge Ravoux)이 있다. 

고흐가 70일간 하숙하며 머물렀던 곳이다. 아직도 그가 머물던 방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주인을 잃은 채. 


초록빛 담쟁이덩굴이 덮인 건물 외벽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 5번 방이 나온다. 고흐의 방(La chambre de Van Gogh)이다. 지붕 바로 아래, 다락방이다. 당시 고흐는 월세 3.5프랑의 하숙비를 내고 하루 한 끼를 먹는 조건으로 이 방에서 지냈다.     

바깥으로 창이 하나 나 있다. 고작 2평 남짓한 조그만 방이다. 덩그런 철제 침대 하나가 놓여 있다. 나는 지금 그의 그림 <노란 방>에 들어와 있다. 침대 옆, 작은 의자는 여전히 외롭다. 조심스럽게 의자를 만져 본다. 그는 이곳에 앉아 무엇을 그렸을까. 돈이 없어 모델을 구할 수 없었던 고흐는 이 방에서 하숙집 딸, 12살 아들렌느의 초상화도 그렸다.      


우아즈 강변으로 걸어 내려온 나는 조그만 카페에 들어갔다. 에스프레소 한잔을 시킨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붉은 제라늄 꽃이 흐드러진 카페 테라스에 앉아 고흐가 동생 테오(Théo)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은 책(Lettres à son frère Théo)을 읽는다.     


“언젠가 내 그림이 팔릴 날이 오리라는 건 확신하지만, 그때까지는 너에게 기대서 아무런 수입도 없이 돈을 쓰기만 하겠지.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면 우울해진다” (1888년 10월 24일)


 고흐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했다. 작품이 팔리기를 간절히 원했다. 평생 879점의 작품이 남겨졌지만 그가 살아생전에 팔린 그림은 단 한 점이었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은 생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돈 400프랑의 헐값에 팔렸다. 현재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에 걸려 있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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