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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충형의 칼리오페 May 03. 2023

글을 시작하며(prologue)

세상의 처음과 끝을 찾아

세상의 세상의 처음과 끝을 찾아처음과 끝을 찾아

세상의 처음과 끝을 찾아


나는 글쟁이가 아니다. 

방송 기자를 업으로 살아왔으니 굳이 직업으로 따지자면 말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천성이 말에 재간이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좌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참다가 나오는 적이 자주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걸 꺼리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애써 읽지도 않았다. 잃어버린 언어들이 이따금 나를 부를 때도 나는 애써 그들을 외면했다. 그 실어증의 시절에 나는 기자를 했다. 온 세상을 쏘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세상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내게 남은 세상은 없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기록하는 것을 나의 소명으로 믿고 살아왔다.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들은 뉴스를 통해 발산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보이지 않는 전파를 타고 공중으로 흩어졌고 그 뿐이었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우리는 화면을 스쳐 지나가는 한 점, 한 순간으로 환원될 뿐이었다.     


내 유년의 다락방


유년 시절, 좁디좁은 다락방은 내가 세상을 꿈꾼 ‘소우주’(mikros kosmos)였다. 세계의 모든 영혼이 생명을 불어넣은 플라톤(Platon)의 소우주처럼 내 유년의 다락방은 모든 나의 영혼이 꿈틀거리고 살아 움직이는, 작지만 거대한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한 구석에는 쌀가마니 속에서 작은 굼벵이 같은 쌀벌레가 꾸물거렸다. 또 한 구석에는 천장에 닿을 만큼 책들이 쌓였다. 누런 책장마다 좀이 슬면서 쿰쿰한 냄새가 다락방을 가득 채웠다. 나는 그곳에서 집문당 출판사의 한국문학전집을 읽었다. 


책을 읽다 그 창가에 기대 낮잠에 들기도 했다. 중학교 운동장이 내다보이는 작은 창문도 나 있었다. 여름이면 매미 소리와 함께 창가의 느티나무 그늘이 다락방 안에 점령군처럼 들어왔다. 그해 여름, 피리를 불면 그 소리가 세상을 행해 나가는 팡파레처럼 울려퍼졌다.     


그곳에서 나는 세상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었다. 미국도 가고 지중해의 쏟아지는 햇빛도 내가 주인이었다. 밤이 깊어지면 다락방 바깥은 다른 세상이었다. 무수한 별들이 눈송이처럼 흩어지는 은하수를 바라보며 나는 잠이 들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다락방의 소년은 어른이 됐고 그 곳에서 꿈꾸던 세상을 특파원이 되어 원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프랑스 유학 시절, 파리 생제르맹 데프레의 좁은 골목길을 정처없이 산책 다니듯, 방랑과 탐험의 세월은 꿈속에처럼 아련하게 지나갔다. 때로는 파리에서 안개 자욱한 거리를 지나 에펠탑으로 걸어갔고, 페르라 쉐즈(Père-La Chaise) 공원묘지에서 프루스트와 쇼팽의 무덤을 방문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대초원에서 말을 달리고,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 서서 5천 년 전 파라오의 이름들을 호명하기도 했다. 지진으로 수십만 명이 숨진 중남미 아이티의 흙담 길에서 가족 잃은 어린이들의 절규를 듣기도 했다. 나는 근 20년 동안 전 세계 사방팔방을 쏘다니며 새로운 사유와 새로운 가치를 찾아다녔다. 아무도 모르는 어느 이방의 길거리에서 나는 무엇을 찾았던가.     


침묵의 시간은 길었다. 

세상을 섭렵하고 다니면서 어느 때부턴가 나는 내 몸에서 두드러기처럼 돋아나고 있는 말의 뿌리들을 생채기처럼 보듬기 시작했다.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젊은 시절의 어두운 겨울 바람, 뭉크의 절규와도 같은 정지된 캔버스에서 해방되고 싶다.      


나는 내 몸속에 내가 무겁게 업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내려놓으려고 한다. 좀 더 가벼워지기 위해. 기자, 언론인이 아니라, 루소가 말하는 자연인으로 돌아가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내려놓으려 한다.     


그래서 유년 시절, 좁은 다락방에서 내가 꿈꾸었던 세상, 이제는 그것을 통해 바라본 세상에 대해 담대하게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내 살갗 위로 돋아나 살아 숨 쉬고 있는 언어의 싹들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기도 하지만, 내게도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제 3인칭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여름날이면 소나기를 맞고, 사나운 바람이 부는 겨울, 밤눈을 맞으며 돌아갈 것이다. 내 유년의 가슴이 뛰던 어느 골목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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