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는 일, 주말에는 마라톤
아빠는 마라톤을 참 좋아하셨다.
풀코스, 하프코스 등등
어느 주말이든, 아빠의 일정표엔 늘
어딘가를 달리는 계획이 있었다.
주말이면 우리는 아빠를 따라
전국 이곳저곳을 함께 다녔다.
아빠는 전국 방방곡곡을 달렸다.
머드 축제로 유명한 보령,
노란 유채꽃이 물결치던 제주,
부산의 바다와 강원도의 산길,
전라도의 들녘까지—
마라톤이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아빠의 발걸음이 닿았다.
우리는 아빠의 마라톤을 따라
자연스럽게 여행자가 되었다.
아빠가 달리는 동안
엄마와 나는 동생과 함께 그 지역을 돌아다녔다.
푸드트럭에서 군것질도 하고
공원에서 사진도 찍으며
아빠가 돌아올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결승선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우리는 늘 한마음으로 외쳤다.
“아빠다!”
눈부시게 땀에 젖은 모습,
그럼에도 초롱초롱한 눈빛과 환한 웃음!
아빠는 우리를 꼭 안아주셨다.
그 안에서 느껴지던 아빠의 체온,
그 기쁨과 뿌듯함은
우리 가족을 한없이 단단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지리 시간에 아이들이 생소해하던 지명들을
마치 내 집 앞마당처럼 이야기할 수 있기도 했다.
집에 있는 한 장의 사진.
환하게 웃으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아빠의 모습은
내게 삶이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아빠는 단순히 마라톤을 뛴 게 아니었다.
인생 자체를 달리고 있었고,
그 끝에서 언제나 웃음을 지으셨다.
보통은 하프코스를 즐기셨지만
어느 날, 42.195km 풀코스에 도전하셨던 아빠.
그날은 너무 힘들어
“엠뷸런스를 부를까…”
라는 생각까지 하셨다는데,
결국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의 두 발로 끝까지 완주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지금 힘들다고 느끼는 것들이
사실은 그만큼 치열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아빠는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뜨거워진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에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
그게 바로 내 아빠다.
아빠는 김광석의 “일어나”라는 노래를 좋아했었는데 아빠가 드라이브하는 뒷 자석에 앉아 같이 합창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