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증권계좌를 만든 건 20대 후반 첫 직장을 얻은 후였다. 우선 월급을 받으면 당연히 저축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려 30만 원짜리 유니버설보험에 가입했다.
(회사까지 찾아와서 사회 초년생에게 종신보험을 저축 인양 판매했던 인상 좋은 아저씨. 추가납입이란 건 설명도 안 해주셨죠? 높은 수당 받아서 잘 먹고 잘 살고 계십니까?)
그리고 은행 이자보다 높다고 하여 증권사 CMA 계좌를 만들었지만 주식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이 컸던 때라 ETF를 조금만 샀다가 잊고 지냈다.
10년이 지나 결혼을 하고 집안 살림을 맡게 되면서 오랜만에 주식계좌를 찾아보았다. tiger200은 올랐고, kodex은행은 마이너스. 그나마 소액을 투자한 거라 소고기 사 먹으면 끝날 액수였다.
그때부터 책도 읽고 경제기사도 찾아보면서 재미 삼아 주식을 몇 주 사기 시작한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나 할까? 한진칼(우)은 경영권 분쟁 덕분에, 신풍제약은 코로나 이슈로 엄청난 수익률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풍제약은 무섭게 오른 만큼 무섭게 떨어지는 바람에 다 팔지 못하고 아직도 계좌에 남아있다.
몇 년 사이 은행 이자가 싸져서 적금을 붓느니 5~10%만 수익을 얻어보자는 생각에 다시 주식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작년 2차 전지와 올해 반도체 상승기 초반에 경제기사를 보고 몇 주만 샀다가 팔았다. 하지만 새 가슴이라 과감하게 투자하진 못해서 얻은 이익은 소소하다.
주식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매일매일 급변하는 호가 창을 보고 있노라니 오르면 못 사서 괴롭고 내리면 못 팔아서 괴로웠다.
그래서 종목을 정리하고 배당주 투자로 전환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나에 성공한 주식투자자가 쓴 책을 보게 되었다. 투자는 마라톤이며 자신이 행복해야 오래 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가치 투자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러나 외국인의 무서운 매도로 하락장이 이어지자 다시 얼음상태가 되고 만다.
아직 미대선이라는 변수가 남아 있지만 바닥을 치고 조금씩 회복하는 것 같아서 오랜만에 증권사 어플을 열어보았다. 온통 파란 창이 가득하여 물타기 보다는 새로운 저평가 종목을 사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래서 참고 좀 하려고 책의 저자인 슈퍼개미의 유튜브를 찾아보았는데 이럴 수가.. 종목을 추천하고 자신은 매도하는 선행매매로 58억의 부당이익을 본 혐의로 일년 전에 재판에 넘겨졌다고 한다. 더 황당한 건 피해자가 수두룩한데도 1심은 무죄였다. 역시 사기 치기 딱 좋은 나라. 씁쓸한 한편 슈퍼개미의 추천주를 알아보려고 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쉽고 빠른 길은 없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