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의 라디오를 청취하며
오전 11시면 라디오를 듣기 위해 분주해진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책상 한편에 두고 식어 가는 동안 그의 첫마디를 기다린다. 이문세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그의 목이 조금 진정된 것 같아 슬쩍 미소를 지었다. 내 모습이 보이진 않겠지만 그가 라디오를 더 오래 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이 웃음, 소망 내지 욕심.
오전 11시 30분, 신청곡이 끝나고 이문세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어떤 내용의 이야기일지 궁금해 귀를 더 많이 열어둔다. 구두 회사로부터 받은 불합격 문자 이야기, “우리 회사에서 일할 수는 없지만, 걷게 될 모든 길을 지지합니다. 구두를 선물하고 싶으니 신발 치수를 보내주세요.” 마케팅의 일환으로 봐야 할까, 팍팍해진 우리를 탓해야겠지. 이것마저도 상술로 보다니.
이문세는 마지막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 이야기를 닫았다. 서로 끝을 잘 맺어야 그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고 하더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온기는 비로소 마지막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도 같이 말해줬으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마지막이어서 끝나는 게 아니고 그것이 또 다른 시작이라고. 내일도 오전 11시를 기다린다. 또 다른 따스함이 전파될 것만 같은 기대 또는 확신.
오전 11시 30분, 어김없이 라디오를 틀어 사연을 듣는다. 오늘은 친정엄마의 습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중 친정엄마의 언어생활이 백미白眉였다는데.
아이에게 단어를 알려주던 친정엄마가 말하길, “이거시 호랭이여. 너 이거 알아 듣겄냐?”, 또 그런가 하면 ‘오도바이, 도마도, 브로코리’, 옆에 두었던 커피 향이 구수해지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리모컨을 레미콘으로, 엘리베이터를 에리베타로, 피톤치드를 치톤피드로 바꿔 말하는 번외 편까지.
사연자는 친정엄마의 언어가 아이의 언어에 영향을 미칠까 봐 우려를 내비친다. 그러면서도 한글과 영어를 배우는 것처럼 ‘할머니어’를 배우는 아이를 속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친정엄마를 보며 엄마가 된 자신이 걸어갈 길을 조용히 탐독해 간다. 모두가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듯하다. 나 역시 오전 11시 30분을 내 일부로 받아들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