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라디오

이문세의 라디오를 청취하며

by 상민

#1

오전 11시면 라디오를 듣기 위해 분주해진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책상 한편에 두고 식어 가는 동안 그의 첫마디를 기다린다. 이문세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그의 목이 조금 진정된 것 같아 슬쩍 미소를 지었다. 내 모습이 보이진 않겠지만 그가 라디오를 더 오래 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이 웃음, 소망 내지 욕심.


오전 11시 30분, 신청곡이 끝나고 이문세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어떤 내용의 이야기일지 궁금해 귀를 더 많이 열어둔다. 구두 회사로부터 받은 불합격 문자 이야기, “우리 회사에서 일할 수는 없지만, 걷게 될 모든 길을 지지합니다. 구두를 선물하고 싶으니 신발 치수를 보내주세요.” 마케팅의 일환으로 봐야 할까, 팍팍해진 우리를 탓해야겠지. 이것마저도 상술로 보다니.


이문세는 마지막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 이야기를 닫았다. 서로 끝을 잘 맺어야 그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고 하더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온기는 비로소 마지막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도 같이 말해줬으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마지막이어서 끝나는 게 아니고 그것이 또 다른 시작이라고. 내일도 오전 11시를 기다린다. 또 다른 따스함이 전파될 것만 같은 기대 또는 확신.



#2

오전 11시 30분, 어김없이 라디오를 틀어 사연을 듣는다. 오늘은 친정엄마의 습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중 친정엄마의 언어생활이 백미白眉였다는데.


아이에게 단어를 알려주던 친정엄마가 말하길, “이거시 호랭이여. 너 이거 알아 듣겄냐?”, 또 그런가 하면 ‘오도바이, 도마도, 브로코리’, 옆에 두었던 커피 향이 구수해지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리모컨을 레미콘으로, 엘리베이터를 에리베타로, 피톤치드를 치톤피드로 바꿔 말하는 번외 편까지.


사연자는 친정엄마의 언어가 아이의 언어에 영향을 미칠까 봐 우려를 내비친다. 그러면서도 한글과 영어를 배우는 것처럼 ‘할머니어’를 배우는 아이를 속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친정엄마를 보며 엄마가 된 자신이 걸어갈 길을 조용히 탐독해 간다. 모두가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듯하다. 나 역시 오전 11시 30분을 내 일부로 받아들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