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에는 책이 항상 있다. 책을 달고 사는 소위 ‘책벌레’ 정도는 아니나, 어찌 됐건 책은 항상 가지고 다닌다. 그렇다고 많이 읽는 편도 아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보고 있다. 빠르게 보는 것도 아니다. 마음에 툭 하고 걸리는 문장이나 단어가 있으면, 1시간이라도 붙잡아 두고 곰곰이 생각한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는 일이 보기보다 드물다. 1년에 얼마나 읽느냐는 물음에 한 달에 한두 권 정도라 답하는데, 다독가들은 아마 ‘그러시구나’ 하고 이내 고개를 돌릴 것이다.
많이 읽지 않음에도 책을 놓지 않는 이유는 배우고 나누기 위함이다. 책은 또 다른 세계라는 말에 공감하는 바, 세계의 모든 나라와 사람을 직접 만날 수 없다는 분명한 한계가 세계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책도 나라는 세계를 만나는 것이기도 하다. 책과 나 사이에 놓인 미묘한 공기를 두고 자웅을 겨룬다. 그래서 연필과 펜을 동원해 책에 무자비하게 혼구멍을 내준다. 페이지가 곧 작은 전투요, 책 전체는 하나의 전쟁이다. 끝내 누가 이겼는지는 그 책을 넘겨보면 알 수 있다. 치열한 사투를 멀찍이 바라보는 것도 좋다.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아마 고등학교 때 문학 시간이었을 거다. 모 국어 교사가 나에게 작품에 대한 해석을 물었던 적이 있다. 무슨 작품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분명히 남은 감정은 알고 있다. ‘재미없음’, 일종의 반항이었던 탓인지 제시된 해석은 썩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내 해석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펜을 책상에 두고 수업 내내 잡지 않았다. 그래서 성적도 좋지 않았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실컷 자신들의 이야기를 떠들어댔던 도덕이 너무나 재밌었고 성적도 좋았던 것과는 대비적이다. 도파민과 싫증은 인정, 그 한 끗 차이다.
나는 배우기보다 나누는 것에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배우는 건 주어진 것을 흡수하는 것으로, 그다음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배우고 나서 그것을 나누든, 치열하게 싸우든, 커피와 술 한 잔 하면서 논쟁을 우애로 뒤덮는 게 내겐 필요했던 거다. 그 국어 시간의 지루함은 어쩌면 내게 오기를 심어주었던 걸까, 수업의 무용성이라기보다 다양성을 바라던 나는 오늘도 책 한 권을 더럽히고 있다. 이젠 연필과 펜으로는 부족해 형광펜을 들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