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매판원
당장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이날은 안 읽을 책을 정리하고 새로운 책을 맞이할 심산으로 밖을 나섰다. 봄이 완연하여 방을 정리하다가 책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랬다. 많은 책을 한 권만 읽고 수납할 것인지, 적은 책을 여러 번 읽기를 반복할 것인지, 나로서는 후자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읽을 때마다 새롭다면 여러 번 읽는 것이 새로운 책을 사는 것과 같다는 나의 지론持論에 따른 결과이다.
강남으로 향했고 알라딘 중고거래까지 마쳤다. 수중에 떨어진 돈은 만 사천 원. 알라딘 가상계좌에서 내 실물계좌로 옮기는 것이 번거로워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신논현역 인근 교보문고를 들렀다. 밀란 쿤데라의 전집이 새롭게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실물로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특히 그간 보고 싶었던 그의 산문, 《소설의 기술 L’Art du roman》의 재고가 있는지가 내겐 중요했다.
분홍색의 표지와 쿤데라의 드로잉, 디자인은 합격이나 표지를 만져보니 조금 실망했다. 두꺼운 종이로 되어 있던데, 이러면 책을 보관하기가 어렵고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는 나로서는 이 책을 두고두고 간직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세계문학전집처럼 종이에 코팅이라도 해주지. 판본이 이게 전부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집어 계산했다. 책을 보기도 전부터 이미 김이 팍 식었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무척이나 배고프니 집에 가서 저녁을 해 먹어야 했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르자 잘 보이지 않았던 매판원이 보였다. 값이 비교적 저렴한 목걸이나 반지를 파는 듯했다. 서점인데 저런 게 잘 팔릴까. 아니나 다를까, 그 매판원에게 단 한 사람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심지어 매대는 구석에 처박혀 있어 굳센 마음 없이는 갈 이유도 없어 보였다. 그도 이런 무료함이 익숙해졌는지 핸드폰만 계속 만지작거린다. 꽤 익숙한 손놀림에 대담함까지.
버스를 타고 집에 와 밥을 먹었다. 무척 배가 고팠는지, 밥 두 공기에 햄버거 반쪽도 한숨에 해치웠다. 숨 막히는 식사가 끝나자, 방으로 들어가 사 왔던 책을 꺼낸다. 낄낄대며 표지를 접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종이 표지라서 어땠더라 식의 감성은 이내 사라지고 책과 나란히 서 있게 됐다. 모든 것은 높아지면서 출발한 게 분명했다. 오르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을, 애초에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