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 Les Choses
현대 자본주의의 일상
인류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일까? 처음으로 불을 사용해 추위를 이겨낸 일, 우연히 버린 곡식이 일용한 양식이 되어 돌아왔던 필연, 여전히 경이로운 피라미드. 얼마나 흘렀는지도 가늠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과 쉴 새 없는 발전이 수없이 많았다. 이런 역사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의 인간상을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자본주의일 것이다. 현대의 ‘신석기 혁명’, 자본주의가 현대를 만들어낸 셈이다.
세상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건 고리타분한 말이 되어 버린 것만 같은 지금, 우리는 어떤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가. 난립하는 인간들 가운데 저 높이 떠오른 또 다른 태양은 금과 은으로 무장한 채 번쩍거리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우리는 자본의 후광에 놓여있다. 시간을 지켜 일을 하는 것도, 근로소득을 얻어 물건을 사는 것도 모두 그 영향권에 있는 것이다.
저 높은 태양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이 너무 부시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저 태양빛을 맨눈으로 마주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정신이 혼미해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무無의 순간을 되짚어 보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털썩 주저앉는 잠식의 세계가 펼쳐지지 않았는가. 이처럼 무력한 소비에 헤어 나오지 못한 건 어느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모두가 자본주의에 맹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욕망과 무력감
제롬과 실비 역시 1960년대 프랑스 현대사회를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프랑스의 중심부인 파리에서 거주하며 가장 우쭐한 일이 “값을 흥정하지 않고 홀린 듯이 물건값을 한 번에 지불할 때”라고 말하던 그들이었다. 그렇게 큰 지출 후에는 언제나 담배 한 개비를 애지중지하며 피워댔다. 담배를 살 돈이 없던 탓에 꽁초도 다 피워 버릴 듯 뻑뻑거린 것이다. 그렇다, 명품과 담배, 그들의 삶은 언제나 모순적이었고 극적이었다.
날이 좋은 주말에는 한껏 차려입고 테라스 자리가 있는 카페에 나가곤 했다. 그들의 손에는 언제나 가십거리가 가득한 잡지가 있었다. 잡지 속 낯선 말들과 화려한 이야기들은 제롬과 실비의 허영을 위한 땔감일 뿐이었다. 다리를 꼬고 앉아 큰소리로 떠들었지만, 반복되는 단어와 추임새만이 맴돌았다. 그래도 그들은 만족했다. 그렇게 멋있게 차려입고 테라스의 한가운데에서 어려운 용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무엇인가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제롬과 실비는 잠시나마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마지막 남은 담배를 피우기로 했다. 하지만 담배에 불이 붙지 않았다. 흔하디 흔한 담배를 피우지도 못할 정도로 바람이 매섭고 차가웠다. 그날 그들은 이유 모를 무력감과 공허에 시달리며, 파리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파리가 선사한 화려함은 빈 껍데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서둘러 탈출하듯 새로운 여정에 나선 것이다.
영원회귀
제롬과 실비는 튀니지로 떠난다. 사막과 그 가운데 늘어져 있는 시장, 그것이 튀니지의 전경이었다. 파리와는 매우 다른 모습에 그들은 당황했으나,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더 이상 공허하지 않을 것이란 밝은 미래를 그리곤 했다. 두 남녀는 같이 살 방을 둘러보았다. 흰 바탕에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그야말로 텅 빈 방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침묵이었다. 아니 어쩌면 또 다른 공허였다. 고급스러운 오리엔탈 풍 카펫도, 창문 너머 보이는 에펠탑도 없었다. 그들이 목도한 것은 평범하기 짝에 없는 무미건조한 대리석 바닥과 길게 늘어져 있는 모래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분명 파리의 삶과 다른 평온한 일상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자신의 방 안을 채우고 싶다는 욕망이 되살아 올라왔다. 빈방을 채우기 위한 벼룩시장도 없었고 중심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무성한 모래바람만이 기다리고 있는 이곳이 너무 단조롭게 느껴졌다. 너무나 모순적인 결정과 생각이지 않았나, 그렇지만 그들은 이미 파리에서의 삶에 익숙해져 있는 인간들이었다. 튀니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다시 짐을 챙겨 파리로 돌아왔다.
두 청춘은 무사히 귀환했다. 가득 채워진 좁아터진 방과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저 전경이 너무나도 그리웠을까. 차가운 겨울 사이 태우지 못한 담배를 나누어 피우며 미소를 살며시 지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똑같은 삶을 살 것이다. 그들은 결국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단순한 귀환이 아니라,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삶의 형태였던 것이었다. 일을 재개하며 매번 벼룩시장을 기웃거릴 것이고, 돈이 부족해 식사 대신 담배 한 개비로 모든 것을 해결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