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Siddartha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닐세.
나는 내가 깨달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걸세.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브라만의 자제로 태어난 싯다르타는 고귀한 존재로 여겨졌다. 브라만이란 혈통도,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큰 존재적 가치를 내뿜었다. 그렇게 타인의 존경과 경외를 받던 싯다르타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무엇이 기쁜가, 저들의 내게 내비친 존경이 나의 만족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그는 오직 자신에게서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신분과 외부 세계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과 온전히 대면하고 싶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가르침은 그와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떠난 고행, 자신의 오랜 벗인 고빈다와 함께 한 길은 멀고도 멀었다. 물도 잘 마시지 않고, 누추한 차림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수행 방식에 싯다르타는 고무되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나를 마주칠 수 있겠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이내 또 다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수행이 과연 개인의 만족과 충만함을 이끌어줄 수 있을까, 우두머리 사문沙門이 이끄는 대로 정처 없이 숲을 헤쳐지나가고 배를 굶주리는 것이 나의 깨우침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사문이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불가佛家의 고매한 정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싯다르타는 고빈다와 사문과도 이별을 전하며 새로운 체험을 위해 다시 떠난다. 온전한 체득을 위해, 정신적 한계를 벗어나 내가 직접 행위하는 것으로부터 이끌어내는 그 무엇인가를 위해.
어느 도시에 다다른 싯다르타는 자신의 세계와 벗어난 현실과 직면했다. 그곳에서 만난 카말라는 평소 느끼지 못한 싯다르타의 육욕肉慾을 일깨워 주었다. 카말라의 아름다운 육체와 그 선들은 싯다르타에게 희열을 선사했다. 잊지 못할 경험을 원하는 싯다르타에게 그녀는 카마수미를 소개하며 그의 물욕物慾을 시험케 한다. 싯다르타는 뛰어난 통찰과 인간에 대한 이해로 큰돈을 벌게 되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더 큰 보상을 원하게 된 싯다르타는 주체할 수 없는 욕심에 도박과 각종 불안에 휩싸인다. 그는 모든 것이 불안하기 시작했다. ‘돈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면 어떻게 살지, 돈이 없는 삶은 실패한 것이 아닐까.’, ‘돈이 없으면 자신은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유혹에서 벗어나야 불안과 멀어질 것만 같았다. 싯다르타는 사랑하는 카말라와도 헤어지며, 호화스러웠지만 추악했던 그 세계에 작별을 고하며 또다시 길 위에 섰다.
초췌한 몰골과 출혈된 눈. 그 혹독한 사문 생활도 견디어 냈건만, 어떻게 이 덧없는 향락에 홀려 나를 파멸로 이끌었는가. 후회를 거듭하던 싯다르타는 삶의 마침표를 찍고 싶단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 자신을 위해 떠난 이 여정을 이대로 마감할 수도 없었다. 그는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강가로 향했다. 강물에 삶의 부끄러움과 아픔이 비치는 듯했다. 고요히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주친 뱃사공, 바주데바. 그의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은 우리의 아픔을 지탱하는 적적한 강과 같았다. 자연의 섭리를 다 헤아린 군자와 같은 모습에 이내 싯다르타는 내면의 평안과 ‘옴’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자신이 그렇게 괴로워했던 그 모든 욕정과 내면의 고결함을 위한 것은 모두 집착이었구나, 강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에 싯다르타는 바주데바와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강물과 같은 삶을 즐기던 싯다르타는 재회한 카말라와 그의 아들을 보며 삶의 마지막 집착을 느낀다. 카말라는 세존世尊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세존이 있는 곳으로 아들과 함께 길을 나서던 중 뱀에 물려 죽음에 직면했다. 싯다르타는 숲에서 이 모자母子를 발견해 기거하던 오두막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카말라는 죽고 아들은 싯다르타와 바주데바의 손에 놓이게 되었다. 싯다르타는 그녀의 아들이 곧 자신의 아들임을 직감하고 아들에게 강의 잔잔함과 삶의 섭리를 알려준다. 하지만 그 어린 소년은 이 지루하기만 한 오두막 생활이 너무나도 싫었고 아버지에게 반항하며 고향으로 돌아갈 궁리만 해댔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보이지 않자, 싯다르타는 불안해하며 바주데바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 오래된 뱃사공은 그저 소년을 소년 그대로 두라는 말만 반복하지만, 싯다르타는 아비가 된 노릇에 어찌 가만히 있겠냐며 어린 아들을 찾기 위해 인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느 도시에 홀린 듯 발을 디딘 싯다르타는 이내 야릇한 감정에 휩싸인다. 자신이 온갖 욕정에 갇혀 한평생의 회한으로 남을 바로 그곳이었다. 망고나무도 여전했다. 변한 것은 자신의 머리색과 썩어가는 육신뿐이었다. 그 백발의 노인은 어느덧 침잠에 이르렀다. 자신이 찾고자 했던 소년은 자신의 마지막 집착과 욕심이었음을, 그 욕정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온전히 나 자신에 달린 것이라고. 싯다르타는 편안한 자세를 취하며 눈을 감았다. 천천히 바람이 불어왔고, 그의 머릿속에는 아무 말 없이 흘러가는 강물만 천천히 흘러갔다.
강물은 여러 지류가 모인 전체가 아니었나. 우리의 지류는 너무나도 다양해 다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 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고요하고 천천히 흐르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모래는 이내 가라앉고 밝게 비치는 태양빛이 스며드는, 스스로 더 큰 바다로 나아가는 이 강물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존재라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싯다르타는 결국 여러 지류가 모여 이룬 또 다른 강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