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서 시작하기

안과 겉, 결혼, 여름

by 상민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은 없다.



1. 가라앉은 유럽과 카뮈


<안과 겉>, <결혼>, <여름>이 쓰인 이 시기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자연과 이성을 구분하는 시도가 가장 잔혹한 살육으로 이어지면서 유럽인들의 충격은 상당했고, 전후 세대는 ‘이 폐허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란 의문을 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로 남게 되었다. 1937년과 1938년 사이에 쓰인 <안과 겉>과 <결혼> 그리고 1953년에 세상에 나온 <여름>까지, 2차 대전과 종전에 이르는 굵직한 세계사적 흐름과 피폐한 시대의 산물이 바로 이 에세이들이다.


카뮈 역시 지난한 개인사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첫 번째 아내인 시몬 이에(Simone Hié)와 뜨거운 사랑을 통해 결혼까지 이어갔지만, 마음의 병이 있던 아내의 약물 의존도는 점점 심해졌다. 카뮈는 유럽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이 관계를 회복하려 했으나, 결국 파국에 이르렀다. 이혼 직후의 카뮈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머물렀는데, 궁핍한 처지와 우울 그리고 불안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자연을 사랑하던 그는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했고, 잠시의 행복을 누렸으나 국제 정세의 악화로 여행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2. 어떻게 다시 떠오를 것인가


어느 때보다 죽음에 가까웠던 이 시기, 카뮈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끽한 제노바의 압생트를 떠올렸다. 뜨거운 포탄과 불구덩이 속에서 문명은 처참히 무너졌지만, 허름한 석벽 사이 피어난 이 압생트와 풀들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쉬이 흔들리고 있었다. 생의 마지막과 맞닿아 있는 그 순간, 삶에 가장 가까운 생명들이 숨을 쉬고 있는 게 아니었던가. 그는 절망하는 자신과 유럽 세계에 ‘압생트’를 선사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래서 카뮈는 파괴와 죽음, 재건과 삶,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기 시작했다. 인간과 생물의 주기는 삶과 죽음이란 시작과 끝을 전제로 하지 않았나. 어째서 생몰을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까, 각기 다른 존재로서 삶과 죽음을 인식한다면, 그것은 죽음을 회피하는 게 아닐까. 다 무너지고 일상이 없어진 이 폐허를 애써 부정할 것인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다시 세워 올릴 수 있을 것인지 자문해 보라. 그가 선사한 압생트는 결국 부조리한 이 세계에 대한 인정이었다. 파괴된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강인함, 이것이 그가 내세운 삶의 찬미인 셈이다.


3. 냉철한 찬가


1940년, 카뮈는 새로운 인연인 프랑신 포르(Francine Faure)와 두 번째 결혼을 맞이한다. 독일의 유럽 정복이 가속화되던 그 시기였다. 매캐한 포연이 가득했지만, 꽃잎이 날리며 축하연이 이어진 이 아이러니, 누가 설명할 수 있겠는가. 카뮈 역시 풀리지 않을 모순을 끌어안은 채, 끝까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묘사로 카뮈의 문학적 총명함을 알린 이 에세이들은 되려 가장 원초적인 삶의 이해였지 않을까. 삶과 죽음을 떼어낼 수 없는 굴레 속에서, 죽지 않는 삶은 없다는 통렬한 진실을 마주한 인간만이 생을 유유히 꾸려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생생한 여름날에 울려 퍼진 가장 차가운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