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가지고 달리는 인간

Sur l'absurde

by 상민
처음으로 카뮈에게 반항해보려고요.


인간이 가장 무기력해질 때가 언제인지를 생각해 봤다. 피곤할 때? 너무 굶주려 속이 쓰릴 때? 물론 모두 뼈아픈 것들이나, 어찌 되었든 이들에게는 다음이 있다. 피곤하면 쉬거나 자면 된다. 배가 고프면 흙이라도 파서 먹으면 배는 채워진다. 다음이 없다는 건 그럼 무엇을 의미할까, 다음이 없으면 무엇을 상상하고 행위할 수 있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아, 고꾸라질 곳도 없는 상태의 인간에게는 그저 소멸만이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 생각의 꼬리만 길게 늘어질 뿐,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어느 굴레에 쿡 처박힌 것만 같다.




언제부터인가 기분 나쁜 무력감이 내게 찾아왔다. 아무런 생각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했을 뿐인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불청객이 무척이나 원망스럽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려 했는데, 시종일관 닥쳐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좋아하는 것이 잘하는 것으로 변모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나를 덮친다. 그러곤 자문해 본다. '네가 정녕 저것들을 좋아하는 게 맞니, 그걸 해서 뭘 하려고 하는 건데,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날카롭게 폐부를 찔려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다.




이럴 때면 ’부조리‘를 생각해보곤 했다. 그가 말하길, ”직시하십시오. 그것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일 테니.“, ”종교나 희망은 철학적인 자살이랍니다. 꿈 깨십시오!“ 그렇다. 사실 현실을 외면하는 것만큼 해로운 것은 없겠다.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 보면 결국 쌓이는 것은 마음속의 헛헛한 찌꺼기와 치우지 못할 죄책감이다. 그에게 항복해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 보이던 찰나, 살며시 오른쪽 손을 내린다. 아니야, 인간은 의미가 없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물론 당신의 말이 우리가 지닌 의미를 모두 지우려는 의도는 아니겠지만, 인간은 스스로에게 속거나 취하는 존재라는 점을 명심해! 처음으로 그의 책을 잠시 덮어두었다.




긴 시간 동안 인간이란 영장류가 살아남은 이유를 아는가. 힘도 약하고 몸집도 작아서 맹수와 거대한 포유류의 좋은 먹잇감이었던 인간이 지금까지 번영하는 이유 말이다. 그것은 헛된 꿈이 있기 때문이다. 맹수들이 지쳐 있을 때를 노리는 그 기다림, 무엇보다 맹수를 잡아 저 얼룩덜룩한 가죽을 모두 벗겨 나의 피부 위에 고스란히 남겨두겠다는 그 망상, 지루하기 짝이 없고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지만 인간은 긴 시간 위를 천천히 달려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