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부두로 가는 길

The Road To Wigan Pier

by 상민
랭커셔의 코미디언들과 공산주의자들,
둘 중에 누가 더 청중들에게 다가갔을까?



1. 위건으로 가기 전에


1903년, 르포르타주로 유명한 조지 오웰이 태어났다. 당시 영국 사회는 산업혁명 이후 막대한 부를 차지한 상류층과 그렇지 못한 빈민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둘 중 하나의 삶을 선택해야 했던 오웰은 애매하게 “하급 상류 중산층”이란 틈에 끼어 살기 시작한다.


그래도 공부를 꽤 잘했던 오웰은 영국의 명문인 이튼을 졸업했다. 이튼을 졸업했으니 자연스레 좋은 대학에 진학할 것으로 보였으나, 그는 돌연 버마로 떠나 경찰이 되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제국주의적 부조리는 그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죄책감을 느끼던 오웰은 경찰을 그만두고 파리와 런던에서 자발적으로 부랑자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지 오웰식 르포르타주의 탄생이었다.




2. 위건에서의 폭로


이 책의 중심지인 위건은 잉글랜드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과거 산업혁명기 당시 탄광과 항구로 유명했다. 도시의 특성상, 노동자와 각종 부랑자가 모여 온갖 도시 문제를 양산했다. 오웰은 그래서 1936년에 위건으로 떠났다. “역겨운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기꺼이 이곳으로 향한 것이다.


생생한 고발의 끝은 “왜 이들의 삶은 변하지 않는가, 왜 노동자들은 사회주의를 외면하는가?”로 향했다. 사회주의에 따르면, 고도로 발전된 산업체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야 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그는 “엘리트들은 사회주의를 그들의 기득권으로의 진출 수단으로 삼았다.”며 일갈한다. 노동자들을 위한 이념이지만, 세상은 그대로이지 않은가. 온갖 어려운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되며 사회주의의 본래 목적과 유리된 것은 아닐까. 이런 양상은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의 무력감과 분노로 이어졌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파시즘은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와 일종의 공생 관계를 맺으며 그들을 포섭해 나갔다.




3. 위건에서 빠져나오며


오웰은 사회주의가 노동자를 위한 이념이라면 반드시 이 체념을 깨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 속 사회주의는 엘리트의 언어로 소비될 뿐, 정작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삶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결국 노동자들을 위한 이 이념은 허상에서만 맴돌아 외면받고 말았다.


그가 위건에서 보았던 것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었다. 가난은 참을 수 있다. 굶주림도, 고된 노동도 결국은 몸으로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이었다. 부두와 탄광의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생존을 이어가면서도, 자신들의 처지를 바꿀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잃어버렸다. 이 무력감이야말로 오웰이 가장 두려워한 지점이었다. 어느 것과도 결탁할 수 있는 그야말로 공空의 상태이지 않은가.


오늘날 위건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활기찬 문화적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오웰이 이곳을 떠난 지 9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위건을 바꾼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회주의자들의 각성? 아니면 그저 자신에 기대어 살았던 노동자들의 끈질긴 삶의 의지였을까? 오웰과 그 시절의 위건은 여전히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