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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란 Oct 17. 2024

나무는 숲의 변화에 적응하고 살아냅니다.

세상과 연결되어도 좋다는 허가들


계절에 맞지 않게 핀 꽃


  한 겨울에도 개나리 꽃이 피고 가을이 되었지만 나무들은 푸르릅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기후 변화를 걱정하고 이러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기후에 따라 생장하는 식물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나무는 단지 기온과 상황에 맞게 꽃을 틔우고 잎을 푸르게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환경이 바뀌고 시대가 바뀐다면 우리도 결국 거기에 적응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잡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위한 노력과 함께 현재의 상황과 변화에 적응하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합니다. 나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자각'이라고 합니다. 현안을 해결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각'에서 시작합니다. 자각하지 못하고 해결하려고 덤빈다면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투명하고 깨끗한 창으로 보세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과 이미 벌어진 일들이 명확하게 인식될 것입니다.



에비에비, 지지-


  다 큰 어른의 귀에도 자꾸만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내면의 부모자아가 하는 말 '에비에비', '지지야'. 또는 부모로부터 아직 직접적으로 듣는 말, "집에서 애나 키우고 편하게 있으면 될 텐데 그 나이에 뭘 시작한다고 그러니? 그게 돈 버는 일 같니? 돈 버리는 일이야."


  아이가 이것저것 입에 넣고 만져보고 움직이다가 탈이 날까 염려되어 "에비에비", "지지야"하고 제지했던 부모의 목소리는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마음 안에서 왱왱거리며 행동하지 못하게 합니다.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고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아무도 결과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시도에 따른 기회비용을 핑계로 우리의 도전은 수없이 제지당하고 좌절됩니다.


  '뭐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시도해보려고 해도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행동하려는 우리를 막아세웁니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격려와 응원보다는 실패했을 때 잃어야 하는 것들을 명심하라는 조언을 듣는 경우가 조금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30대 중반에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 위탁을 받고자 마음먹고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 제 자신을 괴롭혔던 내면의 소리는 '그냥 하지 마, 네 경력과 네 나이에 될 리가 없잖아? 떨어지면 꼴좋다고 비웃을 사람들을 생각해 봐. 그 조롱을 어떻게 감당할래?'였습니다. 제 자신을 제가 막아 세우고 괴롭힐 때마다 남편이 "해보고 싶어서 해보는 건데 결과가 뭐가 중요해? 그냥 해보자."라며 힘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눈을 딱 감고 도전을 했고 결과는 좋았습니다.


  마흔을 앞두고 원장을 그만두고 귀촌을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쉬웠습니다. 직관을 믿고 욕구에 따라 행동해 보는 것의 가치를 앞서 크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는 길이 내 길이 되는 거라 믿습니다. 나의 선택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제 저는 그냥 제 자신을 믿습니다.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문제를 해결해 내는 능력이 있음을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에 제 자신을 믿고 그냥 해봅니다.


  누군가가 강의를 요청하거나, 교육이나 학습공동체의 퍼실리테이터를 부탁해도 그냥 합니다. 재고 따지지 않고 그냥 하다 보니 일의 조건이나 수준조절할  있는 권한이 오히려 저에게 왔습니다. 결과나 이득을 따지다 보면 기회가 적게 옵니다. 경험하지 않고 배울 방법은 없습니다. 배움 없이 성장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무언가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눈앞에 보이면 마음속으로 그저 'Go!' 외쳐보세요. 한다고 우선 마음먹은 다음 '어떻게  것인지', '언제  것인지', '얼마큼  것인지' 등은 스스로가 조절하고 결정하면 됩니다. '이왕 하는  잘해야 하지',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는 어떠한 시도도 불가합니다. '그냥 해보는 거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 보는  의의를 두자.' 하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용기와 허가를 주세요. 경험적 지식은 갈수록 두터워지고, 거기에 학문적 지식까지 어우러진다면 누구도 흉내   없는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게  것입니다.  



실패를 기대하고 가설을 세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책이나 인생의 선배로부터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책이나 인생 선배가 알려주지 못하는 것들은 어떻게 알아가야 할까요? 직접 가설을 세우고 행동에 옮겨서 그 결과를 확인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용기를 갖고 행동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면 다음 할 일은 가설을 세우고 결과를 확인해 보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건조하고 메마른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들은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리는 것 대신 수평으로 뻗어 넓게 뿌리내린다고 합니다. 그래야 비가 올 때 많은 물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선인장에게는 수분 저장, 잎 축소, 변형된 광합성, 두꺼운 왁스질 피부, 방어를 위한 가시, 발화와 종자 맺기의 빠른 주기 등 사막이라는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한 역사를 온몸에 품고 있습니다. 선인장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선인장은 자신의 생존을 도울 가설들을 세웠고 생장을 조절해 나갔으며 방어와 적응에 성공했을 것입니다.


  교류분석에서는 인생이 무대 위에 펼쳐지는 연극과도 같으며, 그 연극의 대본은 인생의 초기에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어떠한 연극의 대본은 해피엔딩이고, 어떠한 연극의 대본은 새드엔딩입니다. 희극과 비극을 결정하는 것은 대본을 작성하는 초기에 결정됩니다. 인생의 각본 또한 그렇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성공하는 각본을 손에 쥐고 있나요? 아니면 실패하는 각본을 손에 쥐고 있나요? 혹은 종종 성공하고 종종 실패해도 아무렇지 않은 각본을 손에 쥐고 있나요?


  성공각본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성공하는 가설을 끊임없이 세울 것입니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의 끝에는 성공만이 있습니다. 실패할 것을 기대하고 실험을 시작하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며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가설을 세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마세요. 기대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전략을 짜고 행동으로 옮기는 노력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릅니다. 그 결과가 실패일지도 모르지만,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할 힘만 있다면 어떠한 결과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떠한 것도 손에 넣을 수 없습니다. 잃을 것이 두려워 지금의 것만 움켜쥐고 있다면 새로운 것을 손에 넣을 수 없고,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지금 가진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더 큰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능력과 내 처지만 바라보고 앉아서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주변을 돌아보세요. 시대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세요. 그 변화에 맞추어 내가 가진 능력과 환경을 활용하는 능력이 성공각본을 이끌 것입니다. 운이 좋아 시대를 잘 맞이한 사람은 없습니다. 시대를 바라보고 시대에 맞게 자신의 능력을 잘 활용한 사람이 성공을 거머쥔 것입니다. 안전하게 가만히 앉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 보다 보면 결국은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안된다 생각하고 포기하지 말고, 된다 생각하고 실험하세요. 성공할 때까지 실험은 반복되어도 좋습니다.



과거도 옳고, 미래도 옳습니다


  시대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새롭게 배워야 할 것들이 넘쳐납니다. 저는 스마트폰도 비교적 늦게 구입하였고, 아직도 배달과 온라인쇼핑몰 애플리케이션은 하나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직접 움직여 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고, 음식은 직접 해서 먹거나 외식을 하지 배달음식은 제한하는 편입니다. 택배 박스와 포장 용기들을 볼 때면 우리의 편리를 위해 소모되고 훼손되어야 하는 자연을 떠올리게 되는 탓입니다.


  그런데 반면 동경하면서도 막상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챗GPT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남편에게 대신 부탁을 해서 물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떠올라 남편을 통해 챗GPT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선행연구가 있는지,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의미 있고 쓸모 있는 연구 주제인지 등을 물었더니 아주 빠르게 정보들을 취합하여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사용해 보기 전에는 어리석은 편견과 아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을 배우는 것은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일이 될지도 몰라'하는 두려움이 문제였나 봅니다. 인공지능을 배우는 것과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은 양립할 수 있습니다.


  자연을 생각해서 배달과 택배를 자제하는 나와 인공지능의 힘을 빌어 배움을 확장시키는 나는, 둘 다 모두 나입니다. 흑과 백으로 나누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보다는 무엇은 취하고 무엇은 배제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회색분자(fence sitter)를 보는 시선이 따갑고 부정적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박쥐 같은 인간', '회색분자'라는 말로 누군가를 비난하고 평가하는 말을 종종 들어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울타리에 걸터앉아서 이쪽도 바라보고 저쪽도 바라보세요. 상황에 맞게,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이쪽을 취할지 저쪽을 취할지 판단하고 언제든지 옮겨 갈 수 있도록 가운데에 머물러도 좋습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경기가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아직도 그들의 대결이 그때만큼 뜨거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미 동행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어린이집 원장이면서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종종 저희 집 아이는 미디어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물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희 아이도 유튜브를 하루 2시간 정도 보는 편이고 태블릿 PC로 게임도 즐깁니다. 그 결과 어떤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아직까지는 그다지 큰 문제는 없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아이가 미디어를 보는 것보다는 아빠와 거친 신체놀이를 하는 것과 자연에 나가 생물을 관찰하는 것,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보는 것,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은 우리가 자랐던 환경보다 더 풍부하고 다양한 자극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어떠한 자극은 옳고, 어떠한 자극은 나쁘다고 판단한다면 아이에게 다양한 자극을 경험할 기회를 제한하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공하고, 부모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한하게 된다면 아이는 적은 선택지 중에서 자신이 해야 할 것을 골라야 할 것입니다. 선택권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 있음을 기억하세요. 그래야 자율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은 자신이 책임지려 노력하지만, 타인이 쥐어준 삶에 대해서는 책임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다양한 환경과 자극에 자기 자신을 편견 없이 놓아두세요.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허가하고 자율적인 삶을 살아가게 도와주세요.      


  무엇을 배울 것인가는 스스로 정할 수 있습니다. 강의식 학습에서 전문적 학습 공동체로 변화되어가고 있는 학습 스타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주제는 학습자가 정하고 배움을 돕기 위한 지원과 자료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은 힘차고 흥미롭습니다. 과거에서처럼 '마땅히 배워야 하는 것'은 이제 없습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배워야 하는 시대도 끝이 났습니다. 절대적인 가치나 기준이 무의미한 시대이기 때문에 어떠한 지식이 앞선 지식이고 어떠한 지식이 뒤선 지식인지 그 누구도 오랫동안 장담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배울 것인지 선택하세요. 그리고 배우세요.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여 배울 수 있다는 허가와 믿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과거도 옳고, 미래도 옳습니다. 과거가 옳다고 미래가 틀린 것도 아니고, 과거가 틀렸으니 미래는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닙니다. 역사에서도 배울 것이 있으며 급속한 변화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훌륭한 존재임을 알아차려보세요. 오래된 미래에서 우리는 지속가능한 행복과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로 회귀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변화에 적응해야 하고 새로운 기술들을 배워야 합니다. 과거도 옳고, 미래도 옳다고 여긴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 또한 옳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꿈보다 해몽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가치 있는 삶으로 가꾸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긍정적으로 의미를 부여했을 때의 말입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면 같은 삶도 지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꿈을 꾼 날에는 인터넷에 꿈 해몽을 검색해 봅니다. 좋은 해석이 적혀있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것이고, 나쁜 해석이 적혀있다면 불안이나 실망에 빠지거나 꿈 자체를 무시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의미가 부여되는가에 따라 우리의 태도는 쉽게 바뀝니다. 이는 스스로 긍정적인 의미를 붙여가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면 긍정적인 태도로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지만 어쨌든지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면,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희 아이가 선천성 기형을 안고 태어나 어려운 시기를 보낸 경험이 있지만, 그 경험 덕분에 우리는 아이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사랑하며 키울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큰 일을 겪었지만 협력해서 이겨낸 경험을 빌어 어려움이 있어도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책임감 있게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이 덕분이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아이가 아프게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한 번도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착하게 살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는 한탄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우리한테는 감당할 능력이 있으니 이 귀한 아이가 우리에게 왔나 보다'하고 생각하며 잘 키우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일만 겪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간이 결정할 수 없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건들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해 가며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꿈을 꾸면 로또를 사러 달려가지만, 로또를 사고 싶다고 좋은 꿈을 의도하여 꿀 능력은 인간에게 없습니다. 원치 않는 일이 벌어졌다고 해서 낙담하고 포기하며 주저앉지 않으려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좋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방어 없이 수용해 보세요. 어떠한 상황에도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위로가 되고 힘이 나는 의미를 부여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분명 있습니다. 꿈보다 해몽이 멋진 삶을 살아가세요. 해석대로 삶이 움직여지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희망과 기대와 만족으로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여기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성공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교류분석 이론에서는 성공하는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자율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성공이라 생각하나요?


  저에게 성공은 결과가 아니고 과정입니다. 오늘 하루에도 기대하는 목표가 있고 그것을 달성하고 퇴근을 하는 날이면 이 세상 누구보다 제 자신이 자랑스럽고 만족스럽습니다. 짧게는 하루의 목표가 있고, 조금 더 길게는 한 해의 목표가 있고,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도 있습니다. 잔잔한 성공들의 합이 자신감과 능력을 끌어올리고 조금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게 돕습니다. 돈도 있는 놈이 번다고, 성공도 해본 놈이 합니다. 매일매일 성공할 수 있는 목표를 가지세요. 긴 목표만 가지고 있어서는 그 목표에 도달할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긴 목표 사이에 잔잔한 목표들이 있어서 따문따문 성공의 쾌감을 선물할 때 자기 효능감과 자기 존중감은 높아집니다.


  여섯 살 꼬마를 키우고 있는 저의 부모로서의 목표는 아침밥을 챙겨 먹이는 것입니다. 아이가 잘 먹어주든 잘 먹어주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밥을 차리는 것은 제 자신과의 싸움이고 계약입니다. 관리자로서의 목표는 부정적 스트로크 대신 긍정적 스트로크를 주는 것이며 배우자로서의 목표는 아무리 바쁘고 지치는 삶 속에서도 둘이 함께 쉴 수 있는 시간을 구조화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긴 목표는 교류분석 이론을 삶과 현장에 적용하여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책도 쓰는 것이고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친절'이라는 가치를 세상에 잘 퍼트리고 가는 것입니다.


  짧은 목표는 짧은 숨으로 가고, 긴 목표는 긴 숨으로 가면 됩니다. 당장 빠르게 달려야 해 숨이 가쁠 때도 있고 멈춰 서서 들숨과 날숨을 고요하게 느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한결같이 평균의 숨으로 가고자 한다면 기계와 같은 무미건조한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숨이 가쁘고 목이 타는 고통이 있기에 들숨이 온 혈관을 타고 내 몸을 채워주는 여유도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하다는 것은 그저 일관됨이 아닌 오른쪽과 왼쪽을 분명히 알고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눈치 없다고 나무라지 말고 칭찬해 주세요


  가을이지만 여전히 푸르른 잎사귀를 눈치 없다 탓하지 말고, 가을이 와서 이제 쉬어도 좋지만 끊임없이 산소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칭찬해 주세요. 겨울이지만 꽃을 틔우는 개나리를 성급하다 탓하지 말고, 아직 봄이 오지 않았지만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에 노란 성장의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넉넉한 마음을 칭찬해 주세요. 우리도 그들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을 통해 삶을 알아가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으로부터 오랫동안 배우기 위해 자연을 보존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착취하기 위해 돌보는 마음을 자연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는 것에서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들은 많지만 시대가 원하는 인재는 그 시대가 정합니다. 시대가 급속하게 변하는 것이 마뜩잖을 수 있지만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지 못하고 세상과 연결되지 못한다면 자율적인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 승복하고 따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류를 잘 타는 새가 하늘을 날아 원하는 곳에 가 닿듯이 세상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각본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결되세요. 그래도 좋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세상과 연결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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