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친밀해도 좋다는 허가들
왜 연결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숲에도 어머니 나무가 있어 주변의 나무들에게 나무의 지혜와 힘을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친정에 가면 느티나무 숲이 있는데 그 숲에는 아주 커다란 어머니 느티나무가 있고 주변으로 작은 느티나무들이 촘촘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그 숲과 어머니 나무를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수잔 시마드라는 식물학자의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라는 책을 우연히 만났을 때 무척 반가웠습니다.
수잔 시마드는 나무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공생하는 관계라고 믿었고, 산림을 경제논리로만 바라보고 벌어지는 제초제 사용과 단일종 식재, 잡목을 벌채 등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녀는 논문과 발표 등으로 자신이 발견한 숲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와 벌목과 제초제 사용에 대한 위험성을 열심히 알렸으나 부정적인 비평들이 이어졌습니다. 논문이라는 구조적인 글쓰기로 기득권들이 만들어 놓은 현실을 손바닥 뒤집듯 뒤엎을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권위적인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힘겨웠지만, 자신의 인생각본과 숲의 이야기에서 공통점을 찾아내어 에세이 형식으로 기록한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라는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숲도 인터넷, 즉 월드 와이드 웹 같았다. 하지만 컴퓨터가 전선이나 전파로 연결되는 반면, 이 나무들은 균근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숲은 오래된 나무들이 가장 큰 소통 허브를, 작은 나무들이 덜 분주한 노드를 구성하며 진균 연결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는 중심부와 위성들로 구성된 체계 같았다. p.377-378
제일 중요한 것은 인연을 강하게 유지하기, 또 우리의 감정에 대한 소통을 계속하기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가 맺은 인연들로 정의된다. p.436
나무들이 뿌리를 통해 서로 탄소를 나누고 성장을 돕듯이 우리도 다양한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그러하고, 배우자와 동료, 친구, 스승과 제자 등 많은 관계들이 서로 사랑과 삶의 지혜를 나누며 서로의 성장을 돕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결되어야 합니다.
즉, 타인과 친밀해도 좋다는 허가는 자신의 또래와 견주어 제 나이답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게 하고, 타인을 신뢰함으로써 일과 생각과 감정을 나누고,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마음의 힘을 주고받으며, 소속감과 자기 효능감을 갖출 수 있게도 해줍니다.
나이테(annual ring)
나이테를 보면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테는 생장환경에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배수가 잘 되고 수분이 풍부하며 완만한 비탈에 자라는 나무는 나이테가 뚜렷하고 고르게 잘 만들어지지만, 가파른 절벽이나 바위산에 자라는 나무들은 나이테가 한 해에 하나씩 만들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장호수, 1983). 이 밖에도 자연재해나 환경오염, 산불 등 여러 환경적 요소가 나무의 생장을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습니다. 서른다섯을 넘겼을 즈음부터 저에게는 나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나이를 물어오면 잠시 생각해야 합니다. '내 나이가 어떻게 되었더라?' 그냥 "1986년 범띠입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수월합니다. 어쩌면 교류분석의 발달 이론을 공부하며 아이를 키우고 나 자신의 결핍을 찾아 메꾸는 과정에서 제 자신의 생물학적 나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종 저는 '애어른 같다', '제 나이답지 않다'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저에게 좋은 뜻으로 해주시는 말씀들입니다. 그런 말들이 예전에는 듣기가 좋았습니다. 부모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아이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가볍게 들리지가 않습니다. 저도 제 나이다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처럼 굴어도 괜찮아', '제 나이처럼 되어도 좋아' 하는 허가를 저는 제 자신에게 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른처럼 든든한 존재가 되어 부모님을 돕고 싶고 선생님을 돕고 싶었습니다. 동생들을 돌보고 싶고, 친구들을 챙겨주고 싶었습니다. 장녀였고 반장이었고 심지어 연애를 할 때에도 저보다는 어린 친구가 편했습니다. 그 탓에 저는 제 나이답게 살아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34살에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이 되어 회의에 나가보니 "어머! 우리 딸이랑 나이가 비슷하네! 부모님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고, 나는 같은 또래의 교사집단에도 속할 수 없고 같은 직군의 원장집단에도 동질감을 느끼기 어려운 박쥐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도 종용하지 않았는데, 왜 저는 제 자신의 성장을 그렇게 재촉했던 걸까요?
일을 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분들은 비슷한 연배에 같은 마음으로 일을 하며 서로 소통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을 즐기는 원장님들이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서로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고 의지하며 원장이라는 직무를 해내시고 즐기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조금 무겁고 큰 옷을 지금이라도 벗어던지고 초라하고 얄팍하더라도 제 나이에 걸맞은 옷을 입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 나이답게 살아가는 것! 앞만 보고 너무나도 빠르게 서둘렀던 제 삶의 속도를 줄이고 느리게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내년 봄은 퇴직과 함께 고향에서 다시 성장할 계획입니다. 빠르게 걷느라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사계절과 가족들과 친구들을 제대로 만나며 다시 걸어볼 작정입니다. 제 나이답게 살아가도 괜찮습니다. 항상 어른스러울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어른다운 면모를 잘 발휘하면 그만입니다. 삶이 언제나 문제상황일리는 없습니다. 삶을 언제나 문제로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오히려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제 나이답게 살아가세요. 느리게 간다고 해서 게으른 것은 아닙니다.
수용하면 믿어집니다
우리는 일관되게 행동하는 사람을 신뢰합니다.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믿을 만하다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의 주변에는 믿을 만한 사람들이 많은가요? 혹은 믿을 만한 사람이 도통 없는 것 같이 느껴지나요? 타인을 믿을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예측 가능한 사람과 함께 살고, 함께 일하고, 함께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인 것 같습니다. 일관되게 나를 돕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일을 부탁하여 나눌 수 있고, 일관되게 친절한 사람에게는 저 또한 마음 놓고 친절을 베풀 수 있습니다. 일관되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대할 때에는 기대하는 것이 없어 실망도 없을 것이며, 일관되게 실수를 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더 정확하게 주의할 점을 안내하면 됩니다.
믿는다는 것은 덮어두고 좋은 사람으로 바라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며, 상대에 맞게 나의 행동을 조절하면 상대로 인한 기대와 실망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일을 줄이면 어떨까요? 자신의 마음과 능력을 기준으로 삼아 상대에 대한 기대를 품고 상대를 평가한다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하는 배신감과 실망, 허무함에 빠지게 됩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는 것은 '믿음'이 됩니다. 상대의 능력이나 바람이 내가 원하는 기준치에 닿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붙들고 있는 아집은 불신을 만듭니다. 내려놓아도 좋습니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능력이 내 능력 같지 않을 것입니다. 상대를 수용하고 믿어보세요. 내 마음이 잔잔한 호수가 될 것이며, 종종 내 마음에 놀러 와 파문을 일으키는 야생오리 가족과 수달의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귀찮거나 짜증 나지 않을 것입니다.
존중하면 친해집니다
저는 노는 것에는 일가견이 없습니다. 성취해야 하는 목표와 결과, 그리고 무언가를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흥미와 관심이 모여 있습니다. 친구와 약속을 잡고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을 담담한 이야기들로 시간을 채우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연락이 닿으면 반갑게 맞이해 주는 친구들이 정말 고맙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친구와 노는 것은 편안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나의 생각들을 떠올려보면 주로 '나는 착한 아이일까? 나쁜 아이일까?', '어떻게 하면 나는 자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한 것이 없게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잡힙니다. 함께 놀면 재미있지만, 혼자 노는 것도 재미있었던 저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함께하는 일보다는 혼자 해내는 일을 더 잘하고, 함께 하는 시간보다 혼자만의 시간이 좋습니다. 특히 글을 쓰는 시간이 정말 좋습니다.
그나마 가족과 보내는 친밀한 시간은 행복합니다. 가족과의 시간을 더 늘리고 싶고, 가족과의 친밀의 질도 더 높이고 싶은 것이 바람입니다. 가족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언제나 아주 강력한 힘을 얻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사랑일 것입니다. 사랑의 힘으로는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아이에게 생선을 먹이기 위해 오징어나 고등어를 손질하던 그 순간의 감각은 여전히 떠올리기만 해도 적잖이 불쾌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안 해 본 경험들을 통해 나를 성장시켰고, 덮어두고 살았던 감정들을 골고루 경험하고 다루어 내면서 마음도 단단하고 용기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에게는 친구보다는 가족이 가깝지만, 가족보다 친구가 가까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좋습니다. 타인과 친밀하게 지내는 경험과 시간은 자신을 살찌우고 성장하게 합니다. 갈등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서로 생각이 다르니 다투거나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생각이 완전하게 일치하는 관계는 없으며, 그것이 옳은 것도 아닙니다. 친밀한 관계라고 해서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누구나 사고할 수 있고, 그러한 사고 능력을 가진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상대방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친밀한 관계는 시작됩니다. 친밀한 관계를 통해 타인과 상호작용 하는 경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그러니 누군가와 친밀해지고 싶거나, 친밀해지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먼저 다음을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의 생각과 내 생각은 다를 수 있어. 그의 생각과 가치관에서 나와 다름을 발견하더라도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존중하자. 서로에게 존중받고 존중하는 관계가 되어보자.' 하고요.
세상에는 옳고 그른 것만큼 중요한 '관계'라는 것이 있답니다. 좋은 관계가 형성되면 우리는 서로 스며들고 감화를 받으며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언제 물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서로의 좋은 점만 닮아가는, 성장하는 관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누군가와 친밀해 보기로 마음먹었다면, 덮어두고 존중해 보세요. 가까워지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입니다.
소속되는 것과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이 억울해!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과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이 억울합니다. 나 혼자서도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전체를 끌고 가는 데 힘을 다 소진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실상 지나 온 과거를 되돌아보면 항상 반장을 도맡아 하려 했고, 동아리 활동을 학과 생활보다 더 열심히 했고, 어린이집 관리자가 되어서도 연합회에서 역할을 하며 중요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왜 행동과 속마음이 이렇게 다른 걸까요?
저는 단지 일이 좋아서 일을 하고, 사람이 좋아서 연대를 쫓아다닌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인정받고 싶었나 봅니다. 교류분석에서는 그 인정욕구를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과 능력에 대한 인정으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저는 후자인 능력에 대한 인정을 아주 강하게 갈구하며 살아온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을 스스로와 타인으로부터 주고받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잘 쉬고, 잘 놀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인정받기 위해 한 일에는 인정이 따라야 하는데, 어떠한 조직에 소속되어 역할을 하다 보면 '하도고 욕먹는!' 일 또한 종종 있기 마련입니다. 인정받고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이 아무리 많았어도, 한 번의 부정적인 평가나 실수는 나 자신에게 큰 생채기와 두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애초에 일이 좋고 사람이 좋아서 했다면 기분 좋게 즐기면서 할 수 있었을 일도 잘하려고 했고 인정받으려고 했다 보니 성과는 남았지만 소진과 허무함이 함께 소복이 내려앉았습니다.
하지만 친정의 느티나무 숲에서 어머니 나무와 울창한 자손 나무들을 보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그렇게 소속되고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괜히 저만 유난을 떨었던 것 같아 부끄러워집니다. 알게 모르게 누구나 연결되어 있고 작고 크게 모두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더 가치 있는 일, 더 중요한 일이 따로 있을까요? 나무들은 소나무니, 느티나무니, 참나무니 서로 경계를 짓고 나누어 따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울창한 숲에도 다양한 나무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고 있고, 그러한 생명의 환경은 다양할수록 진화와 생장에 유리하다고도 합니다.
소속되는 것과 역할을 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어쩌면 바로 그 '다양성'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사람은 왜 내 마음 같지 않을까?', '아니, 어떻게 이 상황에서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모여 살아야 해. 수준이 안 맞아서 못 살겠어!'와 같은 마음이 든다면 소속되는 것과 역할을 맡는 것이 꺼려지고 피하고 싶은 일로 여겨질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 관리자로 조직을 만들어 나갈 무렵 다양한 성향과 경력을 가진 교사들을 이끌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서로가 느끼는 것과 생각하는 것, 그리고 행동하는 것에서 많은 부분이 다르다 보니 조직은 활기차면서도 우당탕탕 소란스러웠습니다. 교직원들은 저에게 한 가지 스타일과 단일한 규정이 있어야 조직이 안정될 것 같다는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요청에 대해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같은 능력을 갖추고 같은 교류를 한다면 갈등은 줄어들겠지만 그건 위험한 발상인 것 같아요.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갖출 수는 없어요. 저부터도 그래요. 저는 그럴 자신이 없어요. 하지만 제가 잘하는 것이 분명 있고, 선생님들 또한 각자 잘하시는 영역이 있어요. 우리는 다양한 능력을 갖고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완벽할 수 있어요.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완벽하기를 기대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서로 협력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면 각자의 무기로 서로를 도울 수 있어요. 다양할수록 우리는 완벽해지는 거라 생각해요."
어머니 나무는 죽음을 앞두고 더 많은 영양분을 뿌리를 통해 내어 준다고 합니다.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추억을 나누거나 유산을 나누거나 유언을 남기는 것과 닮아있습니다. 아니 인간이 나무를 닮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자연처럼 연결되어 있고, 자연과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사랑과 힘은 유익한 것입니다. 친정에 가면 오랜 세월 퇴적되어 온 사랑과 연결의 힘을 가득 채울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러한 연결고리들이 우리 자신을 정의합니다.
어쨌든지, 성공해라
얼마 전에 할아버지께서 작고하셨습니다. 저는 배려심 많은 부모님 밑에서 큰 욕심 없이 자랐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단디 해라, 열심히 해라. 우쨌든가 우리 두라이 성공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아주 따뜻하고 느긋하게 해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공부를 하다가도 잠이 오면 책상에 엎드려서 잠을 자고, 공부가 지루하면 소설책을 꺼내 문제집 위에 올려놓고 읽었습니다. 겉으로는 성실하고 착한 척을 해야 마음이 편하지만 속으로는 하고 싶은데로 하는 자유로운 아이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언젠가 할아버지께서 "니, 부산대는 가겠제?"라고 물으시는데 얼떨결에 "네."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부산대학교 사범대학에 합격을 했고, 같은 반 친구가 서울대학교에 합격을 하여 읍내가 떠들썩했지만 제 자신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구순이 넘어 병환을 겪으시며 삶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보고 싶은 자식들과 손주들을 차례차례 불러 만나고, 큰돈은 아니지만 면사무소(행정복지센터)에 기부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성공하라'라고 하셨고 저는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우리 다 성공했어요. 할아버지 덕분에 다 성공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해 드렸습니다. 할아버지의 그 성공하라는 말씀은 과거부터 언제나 이어진 말씀이었지만, 삶의 마지막에 건네신 그 말의 힘은 어느 때보다 크게 전달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줌의 재가 되어 땅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마지막까지도 삶의 지혜와 힘을 나누고자 하는 경이로움을 지켜보았습니다.
교류분석 상담사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과정에는 자신의 인생각본(life script)을 분석하는 것이 있습니다. 교류분석을 만든 Eric Berne은 "사람은 누구나 세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자기 안에 부모 자아와 어른 자아, 어린이 자아를 갖고 있으며 부모는 자신의 이 세 가지 자아상태를 통해 자녀에게 삶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스트로크 이론으로 유명한 Steiner는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각본 매트릭스(script matrix)를 개발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통해서 저에게 어떠한 삶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셨고, 직접적으로 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한 메시지들이 모이고 모여, 그리고 그러한 정보들을 새롭게 업데이트하고 재배치해나가는 제 자신의 노력이 합쳐져 지금의 제가 있는 것입니다. 숲이 나무의 전부를 정의할 수 없지만, 나무만 놓고는 그 나무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야 나 자신을 알 수 있고, 나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는 내 삶의 물결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을 알고 싶다면 내가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한 번 살펴보세요. 이해되지 않던 나도, 이해되지 않던 나의 부모도, 또 그 부모의 부모도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남을 변화시키거나 통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지고 통제됩니다. 나 자신이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나 자신이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결단하고 새롭게 힘을 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타인과 친밀해도 좋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수용해 보세요. 그들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따르고 인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말미암아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뜻하는 대로 살아갈 마음을 먹어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사세요. 옹이가 있어도 꿋꿋하게 위로 뻗어나가는 나무처럼 성장하세요. 그 시작은 내가 어떤 토양에 뿌리내리고 있었는지를 인식하고, 척박한 토양에 스스로 거름을 내고 물을 주며 성장할 힘을 갖추는 것입니다.
[참고문헌]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수잔 시마드, 사이언스북스
장호수(1983) 연대측정방법. 한국사론 12권(한국의 고고학 1). 국사편찬위원회, 40-61
현대의 교류분석, Ian Stewart 외, 학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