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되어도 좋다는 허가
교류분석에서의 '허가(permission)'라는 개념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강력한 결정을 이끌어 내는 언어적 그리고 비언어적 메시지들을 말합니다(Alden,1988:321). 이 책에서는 허가를 '나 자신이 되어도 좋다는 허가'와 '타인과 친밀해도 좋다는 허가', 그리고 '세상과 연결되어도 좋다는 허가'로 구분하여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허가의 에너지가 가득 차면 삶이 자율적이 어지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지난 화에서 이야기한 '자연이 되어도 좋다'는 허가 또한 오늘 이야기할 '나 자신이 되어도 좋다'는 허가의 일부입니다.
존재하는 데에도 이유가 필요하나요?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왜 그러한 모습으로 진화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저 쓸모없는 벌레는 왜 이 지구상에 존재해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은 보통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름철마다 우리를 괴롭히는 모기들마저도 더 큰 개체의 먹이가 되고 꽃가루를 옮겨주는 등 쓸모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종종 잔인하게도 이런 말을 내뱉습니다. '저 쓸모없는 인간! 저승사자는 뭐 하고 있나 몰라! 저런 쓸모없는 인간 하나 데려가지 않고!'
사회나 가족 구성원 내에서 쓸모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할 이유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내가 존재하는 것은 가장 우선 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애써 '존재의 이유'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존재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쓸모와 존재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이 아프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면 나 자신이 내 존재를 충분히 허가하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세요. 잘 쉬고, 잘 자고, 잘 먹고, 깊은 숨을 쉬고 있는지를요. 잘 쉬고, 잘 자고, 잘 먹고,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 우리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면 나 자신을 태아와 신생아 같이 돌봐주세요. 보드라운 담요를 걸치고 안락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앞뒤로 움직이는 의자의 움직임에 몸을 맡겨보세요. 부드럽고 고운 음식을 먹고, 안정된 심장박동 사운드스케이프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웅크리고 앉아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면서 '이곳은 안전한 곳이야. 그리고 너는 이곳에 존재해도 좋아.'하고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세요. 치유 대신 다시 성장하기를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태아였던 나와 신생아였던 나를 떠올리며 하루하루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아야 했던 아이를 다시 사랑해 주고 돌봐주세요. 거기에서부터 성장은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몸에게-
저는 삶을 포기하려고 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적절하게 휴식하지 못하는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일, 육아, 살림, 공부에 온 시간을 쏟으면서 자신을 돌보고 쉬는 것은 소홀히 하였습니다. 제 몸이 저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면 '나한테 지금 죽으라는 거지?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몸은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건강의 문제로 저에게 신호를 보내주었고, 그 덕분에 저는 쉬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항상 바쁘고 일에 쫓기듯 살아왔던 저는 호흡을 할 때에도 아주 얕은 수준의 들락날락임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숨을 어떻게 쉬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아도 어떠한 감각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명상을 하면서 호흡에 집중하는 일은 너무나도 낯설고 어려웠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매우 급하게 먹는 편입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이 살아왔던 저는 나 자신에게 식사 시간조차 여유 있게 내어주지를 못했습니다. 운동을 할 시간을 만들지 못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쉽게 버리지 않은 내 몸에게 감사합니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 온몸의 감각을 확인해 보고 오늘도 살아 존재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부터 전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시작하는 하루는 소중하고 특별합니다. 아무리 할 일이 많고, 중요한 일을 다루고 있다고 한들 건강하지 않고서는 소용없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건강해도 좋다고 허가해 주세요. '반드시 건강해야 해!'하고 자신을 몰아세우면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건강을 더욱 해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공해도 좋아', '중요한 사람이 되어도 좋아'라는 허가만큼 '내가 건강한 것도 중요하지. 건강을 잃고는 그 무엇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어.' 하는 허가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실천해 보세요.
귀하게 음식을 차려 먹는 날이란 따로 없습니다. 적은 양이라도 좋고 비싸지 않아도 좋습니다. 매일매일 귀한 손님을 대접하듯 자기 자신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해보세요.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의 밥상을 차리는 마음으로 매일 자신을 먹이고 살리는 것은 어떨까요? 몸이 건강으로 회답해 올 것입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여봐도 괜찮아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고 산다는 것만큼 자유롭고 신명 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뭐든 저지르고 보는 사람입니다. 도토리에서 싹이 터져 나오고 아래로는 뿌리가 흙을 뚫고 내려가는 힘을 가로막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아주 어린 시기부터 행동을 통제받고 제지당합니다.
"지지!", "에비!", "입에 넣지 마.", "가만히 앉아있어야 착한 아이지?", "누가 제일 예쁘게 앉아있나 보자."
경험해보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배움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그저 순응하는 것이고 그저 경계하는 것을 익혔을 뿐입니다. 행동해도 좋은 안전한 환경에 아이를 두고 마음껏 행동해 보도록 허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아이는 자신의 욕구는 인정받아 마땅한 것이라는 허가를 받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욕구를 충분히 허가받은 아이는 자라서도 세상을 향해 마음껏 도전할 것입니다. 비록 실패를 경험한다 하더라도 다시 용기를 내어 도전할 것이고 결국 성공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든다면 지금이라도 안 해본 경험을 찾아서 해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의 경우는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제 자신이 떳떳하고 자신 있었습니다. 일을 잘하니 일만 했습니다. 나 자신이 정말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런 것이 있기나한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열심히 했고, 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멈춰 서서 진정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찾아 낸 것이 집단상담 프로그램 진행이고 글쓰기였습니다. 일이 힘들고 시간이 없어도 저는 글을 쓰고, 여러 사람과 어울려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노력합니다. 더 쉬지 못하게 나를 몰아세우나 염려했지만, 오히려 힘이나고 삶이 즐거워졌습니다.
돈벌이가 되지 않아도 좋고 남들 보기에 하찮아 보여도 좋습니다. 자기 자신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해보는 경험은 성장의 욕구인 피시스가 굳어진 자신의 성격을 뚫고 힘차게 마음 밖으로 솟구쳐 나가는 것을 도울 것입니다. 그러니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그냥 해보세요. 돌담에 뿌리를 내리고 비스듬히 자라나는 풀꽃처럼, 갈라진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잎 마른 들풀처럼 너무 많은 것을 내다보지 말고 그저 성장하세요. 인간도 자연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구라는 이 행성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떠오르는 감정과 마주할 용기
자연이 어떠한 환경에서든 성장하고자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감정이 없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인간인 나도 감정이라는 걸 느끼지 않는다면 쭉쭉 성장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을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아주 훌륭한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현재 닥친 문제를 알아차리게 하고 해결하는 것을 돕는 감정이 '분노'이고,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문제를 알아차리고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지나간 과거가 되었지만 상실에 대한 애도가 충분하지 않았다면 '슬픔'이라는 감정이 아직 충분히 더 그 문제를 다루어서 해결해야 한다고 알려줄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은 어떤 상황에서도 힘을 내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명상을 하고 등산을 하는 일, 종교를 믿고 동물이나 식물을 돌보는 일은 감정을 억누르고 무시하는 수행이 아니라 떠오르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신호삼아 자기 내면에 가득 찬 불필요한 수치심과 죄책감, 열등감 등을 해결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느껴도 좋다'라는 허가를 주세요. 어떠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그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원하지 않는 행동을 수동적으로 행하는 것으로 마땅히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느끼는 것과 사고하는 것, 그리고 행하는 것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설령 분노를 느끼는 순간에도 잠시 멈춰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은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조종키를 감정에게 내어주지 마세요. 감정이라는 것은 우리가 걷다 보면 마주하는 다양한 광경과도 같습니다. 다양한 광경 앞에서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광경은 그냥 배경일뿐입니다. 보기 싫은 광경이 나타나면 더욱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가버리면 금세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감정에 얽매여 주저앉지 않기를 바랍니다. 크게 호흡하고, 힘을 내서 생각하고 행동하세요.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에서 얼른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감정도 묵히면 상합니다
비교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은 왜 생겨난 것일까요? 표현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그러한 미운 감정들로 인한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자신과는 다른 타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알아갑니다. 타인이 갖고 있는 좋은 능력이나 인성을 발견하게 되면 최초에 느끼는 '와! 대단해!' 하는 그 감정을 묵혀두지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바로 표현하고 나면 상대방은 칭찬이 고마워 내가 갖고 있는 좋은 면을 알려주는 것으로 보답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한 선순환으로 우리는 타인과는 구별되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힘을 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상대를 훌륭하게 여기는 그 최초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만 묵혀둔다면 그 마음은 금세 상하고 섞어서 시기와 질투, 나아가 수치심과 자기혐오 등의 더욱더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 되어 자기 자신을 아프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나쁜 감정과 마찬가지로 좋은 감정도 쌓아두어서는 안 됩니다. 쌓아두고 삭혔을 때 더욱 값어치 있어지는 것은 김치와 된장 말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칭찬도 밖으로 꺼내고 표현해도 좋습니다.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을 팔불출이라 깎아내리던 시대는 이미 과거가 되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남이 옳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남이 옳다고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나도 옳고 너도 옳을 수 있으니, 자기 자신도 충분히 격려하고 타인에게도 시원하게 칭찬하며 좋은 감정도 쌓아두지 말고 쓰고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저는 생일잔치를 썩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일 년에 한 번 자신을 위해, 또는 생일을 맞은 타인을 위해 사랑과 존중과 행복을 선물하는 것은 어쩌면 365일 중 364일은 남을 위해, 평범하게, 티 내지 않고, 점잖게, 참아가며, 존재에 대한 사랑을 아끼라는 말 같이 느껴집니다. 매일매일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고 대접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태어나서 존재하는 이 하루하루가 매일같이 잔칫날이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이 되어도 좋다는 허가를 다섯가지의 작은 주제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야'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아야지'
'어떠한 감정도 옳지 않은 건 없으니 느껴지는 그대로 느껴도 좋아'
'자기다움이 무엇인지를 타인을 통해 알아가기를 바라'
당신은 스스로에게 '나 자신이 되어도 좋다'는 허가를 충분히 주며 살아가고 있으신가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존재할 수 있도록 허가한 사랑스러운 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며, '넌 무엇이 하고 싶니?'하고 자신에게 물음을 던져보세요. 내면의 깊은 곳에서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아이답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그 따뜻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세요. 그렇게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하지 마!', '넌 그거밖에 안되니?', '그러고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따위의 비난의 목소리로부터 자신을 방어해 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존재가 가치롭게 빛날 수 있는 순간은 자기다울 때입니다.
높이 가지를 뻗고 푸르른 잎사귀로 무성한 나무를 떠올려보세요. 아마도 그 나무의 뿌리는 토양에 아주 튼튼하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을 채우지 않고는 남을 위해 기능하거나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힘이 나질 않습니다. 종종 지인들을 만나면 자기 자신이 힘이 들어 지쳐있는데도 남을 돕겠다는 소망을 열심히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저 또한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토양에 깊이 뿌리내리지 않고 하늘 높이 뻗어나갈 수 있는 있는 나무는 없습니다. 그 토양은 자연이 될 수도 있고,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고, 나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타인이 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무엇이 되어도 좋으니 내가 뿌리 내려도 좋을 토양에 안전하고 깊이 뿌리내리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의 힘이 차고 넘쳐야 밖으로도 흘러 넘칠 수 있습니다. 빈 독은 채워지지도 않을뿐더러 흘러넘치지도 않습니다. 내 마음에 구멍 난 곳이 없는지 먼저 살피기를 바랍니다. 구멍 난 곳이 있다면 찬찬히 정성을 들여 메꾸고, 다시 맑은 물을 부으면 됩니다. 흙탕물이 흘러들어와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맑은 물을 계속해서 붓다 보면 흙탕물은 희석되고 흘러넘쳐 어느 순간 맑은 물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먼저 돌보세요. 자신을 돌보는 것을 우선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그래도 괜찮습니다."
과거에 나 자신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고, 그 구멍으로 인해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이 든다면 다시 성장하면 그만입니다. 성장을 돕지 못했던 부모를 탓할 이유도 없고, 성장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탓할 필요도 없습니다. 부모를 향한 원망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심으로는 성장의 원동력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 더이상 우리 자신을 힐링이 필요한 수동적인 존재로만 두지말고, 다시 성장할 수 있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존재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그 시작을 '나 자신이 되어도 좋다'는 허가에서 시작해보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