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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겨울이 왔음을 받아들이기

월동준비 step 1.

by 손두란

겨울 하면 떠오르는 추억들 중 집과 관련이 있는 장면은 구들장 위의 새까맣게 탄 노란 장판과 귤 상자를 장롱 앞에 끓어다 놓고 장롱 안에 숨어들어 귤을 까먹으며 책을 읽던 순간들이다. 손톱 밑이 노란 손가락으로 책을 넘기다 보니 책에도 귤 향기와 노란 귤물이 은은하게 베였다. 추위 때문에 밖에 나가 놀 수가 없어 하루 종일 집안에서 가위질을 하거나 바느질을 하며 온 방 안을 난장판을 만들어댔지만 엄마는 집 안에 꼼짝없이 갇혀있어야만 했던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온갖 저지리에도 야단치지 않으셨다. 못 입는 옷을 잘라 헝겊으로 된 필통도 만들고, 잡지를 오려 수첩을 꾸미며 시간을 보냈다. 바깥바람은 너무나도 매서웠지만 그럴수록 시골집에서의 겨울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엄마를 닮아서인지 나도 크게 불평불만 없이 순응하며 살아가는 어른으로 컸다. 그와 동시에 순응적이라는 성격은 속마음이 평안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나를 순응하도록 만든다는 것,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까 두려운 마음에 내가 먼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든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엄마도 우리가 소리치고 떼쓸 것이 두려워 그냥 마음대로 놀게 내버려 두셨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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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글로 옮기는 사람, 교류분석(TA)이라는 틀로 나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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