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이다. 삶에서 처음 맞는 기념일이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은 지인들로부터 생일케이크와 생일선물을 받는 날이고, 연인과의 100일은 비싼 식당을 예약해 둘이서 오붓하게 분위기를 내는 날이었는데, 배우자와의 결혼기념일은 도통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기념해야 하긴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 것인가?
일단 좋은 식당을 예약했다. 연애할 때처럼 맛있고 행복하게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평소와 다른 것은 코스 마지막에 기념일 케이크가 나와서 좀 더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산책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했다. 평소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바는 없었지만 그래도 결혼기념일이니 '결혼한 지 벌써 1년이나 되었다니', '그때 이사하느라 힘들었지', '신혼여행 다시 가고 싶다' 등의 이야기가 간간이 추가되었다.
그 후에는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이렇게 결혼기념일을 보내는 게 맞나? 뭔가 더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집에 들어오니 외출복을 벗어던짐과 동시에 몸과 마음이 풀어져 버려서 다시 나가겠다는 의지도 스르륵 빠져나가 버렸다.
지난 364일처럼 수다를 떨고 저녁밥을 지어먹다 보니 어느덧 밤 9시가 되어 일찍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 침대 옆에 누운 배우자의 얼굴을 쳐다보며 주말이 가는 게 아쉽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런 일상이 정말 365일밖에 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너무도 익숙해져 버렸지만, 불과 366일 전에는 내 옆에 배우자가 있지도 않았고, 같이 잠드는 날은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여행 갈 때나 발생하는 이벤트였다. 1년도 안되어 30여 년간 살아온 생활습관을 모두 잊어버리고 지금의 삶에 완전히 적응해 버렸다니 새삼 생경했다.
그렇지만 앞으로 살아온 만큼 혹은 그 두 배만큼 배우자와 함께 잠들게 될 것이고 오늘 같은 기념일을 수십 번 더 맞이하게 될 테다. 그때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내 곁에 있어줘서 삶이 조금 더 즐거웠다고 말할 것 같다. 결혼기념일이란 내 옆에서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배우자의 고마움을 깨닫게 하는 날인가 보다. 얼마나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기념일을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