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팝업지옥

by angle

어느 순간부터 기업들에게 팝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정식 매장이 아니어서 지도 어플에서 검색하기도 어려운 수많은 팝업들을 어떻게 그렇게 다들 잘 알고 찾아가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서울에서 성수동은 가장 팝업이 즐비한 동네이다. 주말마다 사전예약과 현장대기 줄이 곳곳에 깔리고 문이 열리면 순식간에 수많은 대기열이 생겨난다. 나도 그 대기열의 한 명을 담당하기를 좋아한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큰지라 3주 연속 같은 주소지를 방문하더라도 지난주는 화장품을, 이번주는 음식을, 다음 주는 게임을 체험하게 된다는 점은 상당한 만족감을 준다.


여느 날처럼 팝업 5개의 사전예약과 3개의 현장방문을 예정하고 나온 토요일이었다. 1시에 나와 핸드크림을 받고, 연필을 받고, 음료수를 받고, 스티커를 받고, 엽서를 받고, 비누를 받고, 열쇠고리를 받았더니 3시 반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어느 곳도 나의 돈을 지불하고는 물건을 구입하지 않을 것임을. 심지어 그중 일부는 기업명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주말마다 만 보를 넘게 걷고 비워간 에코백 한가득 무언가를 받아 오지만, 그것이 기업들과 나를 위해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최근 한 달간 내가 방문한 대다수의 팝업은 외모는 준수하지만 팝업을 개최한 회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일일 알바들을 채용해 컨베이어 벨트처럼 손님들을 입장시키고 앵무새같이 스크립트를 읽으며 요식적인 퀴즈를 몇 개 맞추게 한 뒤 SNS에 필수해시태그를 달아 게시글을 업로드하면 증정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나도 한때는 가방만 무거워지면 마냥 기뻐했었다. 붙일 곳 없는 스티커라도 한 움큼 집어왔고, 어울리지 않는 색상인 립스틱을 받으면 어떻게든 다른 색상과 섞어 써보겠다고 고군분투했다.


생각해 보면 기업들은 일주일치 팝업 개최를 위해 소모하는 인력비, 소모품비, 임대료를 상품개발에 쓰는 게 더 효과적인 광고수단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어떤 주제로 운영되는지도 모르는 팝업 방문에 쓰는 시간을 줄여서 내가 필요한 제품을 직접 찾아 구입하는데 투입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지도 모르겠다.


기업인이 아닌 나는 인지하지 못하는 심오한 팝업의 의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홀로 고객만족도 설문을 해 보자면, 기업마다의 특색이 사라진 정형화된 팝업보다는 그 기업의 강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기억하게 하는 팝업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업들도 나도, 서로가 서로의 돈과 시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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