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이후의 턴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읽다가 발견한 소제목.
'젊어서는 용기, 나이 들어서는 지혜'라는 문구를 보고 가슴이 '쿵' 했다.
'지혜롭다'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 전부터 유난히 이 단어가 자꾸 가슴에 와닿는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나온다.
'공자의 지혜'라는 일화가 있어서 읽어보았다.
제자 안회와 있었던 일이란다.
안회는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 중의 한 명이었다.
어느 날 안회는 시장에 들렀다가 가게주인과 손님이 시비가 붙은 것을 보았다.
가게 주인이 3 * 8은 24이니 물건 값으로 24전을 달라고 하자,
손님은 “3 * 8 은 22인데 왜 나한테 24전을 달라고 하느냐, 22 전만 주겠다.”며 가게주인에게 따지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본 안회가 손님에게 “당신의 계산이 틀렸다. 가게주인 말대로 24 전이 맞다”라고 하자, 손님은 안회에게 “당신도 주인처럼 계산을 잘못하고 있다. 3* 8은 22가 맞다.”면서 공자님 말이라면 내가 믿겠으니 공자를 불러오라고 한다.
이때 안회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그럼 좋습니다. 공자님께서 만일 당신 계산이 틀리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고 묻자, 그 손님은 당당하게 “ 좋다. 내 목숨을 내놓겠다. 그러면 당신은 무엇을 내놓을 것이냐?”라고 반문한다. 그러자 안회는 “제가 틀리면 내가 쓰고 있는 관을 내놓겠다.”라고 대답하고, 손님을 데리고 스승인 공자한테 간다.
공자는 두 사람의 사유전말을 다 듣고 나서, 안회에게
“네가 졌으니 , 이 사람에게 관을 벗어 내 주거라.”라고 판결을 내린다.
안회는 스승인 공자의 판결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분한 마음에 밤잠을 설치고 고민하다가 자기 스승이 우매해서 이런 판결을 내렸다고 생각하고 다른 스승을 찾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다음 날, 떠나가는 안회에게 공자는 직접 대나무에 글을 새겨서 준다.
‘천년고수막존신 (千年古樹莫存身) , 살인부명물동수(殺人不明勿動手)’
안회는 작별인사를 한 후 착잡한 맘으로 고향집으로 향해 가다가, 길에서 갑자기 천둥소리와 번개를 동반한 큰 소나기를 만난다.
잠시 큰 비를 피하려고 급한 마음에 길 옆에 오래된 고목나무 밑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때 스승의 첫마디가 떠 올랐다.
‘천년고수막존신 - 즉 천 년 묵은 나무에 몸을 숨기지 말라’
순간 그는 그곳을 다시 뛰쳐나왔고, 바로 그때 번쩍하면서 그 고목이 번개에 맞아 불이 붙으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안회는 아찔했다.
고향집으로 간신히 도착한 안회. 도착하니 이미 늦은 밤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는 아내를 깨우지 않으려고, 자신의 몸에 차고 있던 보검으로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 게 웬일인가? 아내의 옆에는 또 다른 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다니.. 그는 순간 화가 치밀어서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내리치려는 순간, 스승인 공자의 충고가 생각났다.
‘살인부명물동수 – 즉 명확지 않고서는 함부로 살인을 하지 말라.’
얼른 촛불을 켜보니 아내 옆에 누워있는 사람은 자신의 누이동생이었다.
다음 날, 안회는 날이 밝기 무섭게 공자에게 되돌아갔다.
“스승님이 새겨주신 두 마디 말씀 덕분에 제가 벼락을 피했고, 제 아내와 누이동생을 살렸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그런 일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아셨는지요? ”
공자는 무릎 꿇고 있는 안회를 일으켜 세우며.
“안회야, 첫째는 어제 날씨가 심히 무더워서 다분히 천둥 번개가 내릴 수 있을 것이므로 벼락을 끌어들이기 쉬운 고목나무를 피하라고 했던 것이다. 또 둘째는 네가 분개한 마음을 풀지 못하였고, 또한 보검을 차고 떠났기에, 너를 자극하는 조그마한 일에도 분명 예민하게 반응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본다면 누구나 그런 상황을 미리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는 이어서 말하길,
“안회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왜 네가 집으로 급하게 돌아갔는지.
하지만 안회야, 한번 잘 생각해 보아라. 네가 내기에 지면 너는 그저 머리에 쓰는 관 하나 내준 것뿐이지만, 만약에 내가 3*8= 24가 맞다고 하면 그 사람은 목숨 하나를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말해 보거라. 관이 더 중요하더냐?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더냐?”
안회는 비로소 이치를 깨닫고 큰 절을 올리며 대답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스승님의 보잘것없는 작은 시비를 무시하고 대의를 중요시하는 그 도량과 지혜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그 이후부터 안회는 그의 스승인 공자 곁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지혜는 단순히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친절하다.
얼마 전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에서 한 부부의 얘기를 읽었다.
나이 들어 보이는 아내가 작가님께 갑자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우리 둘 중에 누가 더 어려 보여요?”
작가님은 남편이 아내의 동생처럼 보였지만..
“ 두 분 모두 젊지만, 남편 보다 아내 분이 조금 더 어려 보이세요.”
그러자 아내는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지었고, 혹시 아내가 실망스러운 대답을 들을까 봐 걱정하던 남편의 얼굴도 미소로 가득 찼다고 한다. 작가님은 순간 겉으로 보이는 사실보다는 보이지 않는 마음속 진실을 더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하셨다.
“몸이 아무리 늙어도, 마음까지 늙는 사람은 없다.”
지혜는 깨달음이다.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라.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큰 잘못이다.
지혜, 깨달음을 무시하면 세상에 자신의 어리석음을 기념비처럼 드러낸다.
며칠 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 그대로, 무심히 내뱉어 버린 말이 있다.
그런 말들일 수록 다시 고쳐 말하기 쉽지 않다. 하면 할수록 말이 꼬이고 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가 일쑤다. 처음부터 신중했으면 좋으련만 내가 왜 그랬을까 ᆢ후회가 됐다.
지혜는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는 그 자체가 예지다.
지혜의 시작은 지혜를 받아들이려는 진실한 소망에서 시작한다.
지혜는 멀리 있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손을 뻗어 찾을 수 있다.
지혜는 그만큼 찾기 쉽다.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간다.
지혜는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는 쉽게 알아보고 발견하게 한다.
지혜는 예리하다. 명석하다. 명료하다, 분명하다.
지혜는 섬세하다. 민첩하다.
지혜는 유일하면서도 다양하다.
지혜는 자유로우면서도 확고하고 , 또 확고하면서도 자비롭고 인자하다. 평온하다.
지혜는 영원하다.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지혜는 지혜를 생각하는 사람 안에 머무르며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지혜는 마음의 근심을 환하게 밝혀준다.
지혜는 덕을 가르치는 스승이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시기는 지혜와 결코 함께 갈 수 없다.
지혜에 대한 말씀들을 정리하다가 다시 인터넷을 뒤져보니,
김형석 교수님이 쓰신 '백 년을 살아보니'에도 때마침 우연히도 공자의 얘기가 나온다.
“성실하면서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은 공자예요,
공자는 성실한 윤리학자였어요. 하지만 공자는 영원성, 내세의 문제, 인간의 참다운 자유와 행복에 대한 문제 해결은 못 내렸지요. 그것은 종교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신앙을 가지려면 성실성에 경건성이 더해져야 합니다. 내 친구 김태길 선생은 말년에 딸을 슬프게 잃었어요. 그런데 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그분의 슬픔을 철학과 윤리가 해결을 못해주었죠. 그분도 결국 신앙으로 돌아왔지요, 그때 그는 성실이 아닌 경건을 받아들인 겁니다. 더 높고 영원한 것을 말이지요."
‘인생이란 운명도 허무도 아니리니..’
"철학자는 결국 두 부류입니다. 운명론자 아니면 허무주의자입니다. 니체는 운명론자였어요.
태양이 서산에 지는 것처럼 운명에 맡기라는 것이지요. 나는 운명도 허무도 아닌 섭리를 받아들였어요. 섭리란 내가 모르는 제삼자가 나를 이끄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서울 대학교 박종홍 교수는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로 여전히 가장 존경받는 지성인입니다.
그분은 지성 성, 이룰 성, 거룩할 성의 3단계를 이야기하며, 이 길이 철학에서 종교로 이르는 길이라고 했죠.
내가 살아온 나날을 훑어봐도 내 선택이 아니라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철학자가 도달한 신앙은 목사나 신부들의 신앙과는 다르지요.
몇십 년을 학문적으로 두드린 후에 내린 결론이지요. (웃음)....”
인터뷰내용을 옮겨 적다가 잠시 다시 지혜를 생각해 본다.
'지혜란 무엇일까? 지혜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40대의 '불혹'에서 50대의 '지천명'으로 넘어가는 순간.
하늘의 뜻을 아는 지혜. 이것이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이 얘기하는 섭리일까?
하늘.. 거룩함. 성스러움. 경건함.
윤동주 시인이 노래했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바로 그 하늘일까?
윤동주시인의 시가 아름다운 작품이라면.
김형석 철학자의 글이 아름다운 지혜라면,,,
그 들의 손끝이 가리키는 것은 '하늘'인 걸까?
'지혜' 너를 내 마음과 몸에 깊이 스며들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