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이후의 턴
늘 모자를 쓰고 다니시는 선배님이 계셨다. 그분이 어느 날 모자를 벗고 모임에 나오셨다.
그분 뒷모습을 보니 왜 그동안 무더운 한 여름에도 모자를 고집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앞머리에 비해 뒤 쪽 정수리 부분의 머리숱이 휑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모임에서 그동안 숨겨왔던 머리숱을 드러내고, 모자를 벗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그분의 얼굴은 휑한 머리숱과 달리 말 그대로 화색이 가득했다.
“ 어머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오늘은 모자를 안 쓰고 오셨네요. 그런데 요즘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안색이 너무 좋으세요~”
“ 아 , 정말요? 제가 요즘 강의를 하나 들으러 다니는데, 그 강의 내용이 얼굴 경영에 관한 것입니다.”
“ 네? 얼굴 경영이요? 얼굴도 경영해요?”
“ 네, 우리가 흔히 관상을 본다고 하는데.. 관상은 한 사람의 얼굴을 통해 과거를 보는 거고요, 얼굴 경영은 앞으로 좋은 관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내 표정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한마디로 관상은 과거, 얼굴경영은 좋은 미래를 위한 현재의 선택이죠.”
그러면서 내게 물으셨다.
“ 성희 씨는 하루에 우리가 제일 많이 먹는 게 뭔 거 같아요?”
“ 음.. 글쎄요,.. 밥? 간식?..공기?”
“ 하하 , 공기일 수도 있겠네요. 그럼 공기보다는 적지만 음식보다 많은 것은? 바로..마음입니다.”
“ 네?? 마음요?? 아하!! ”
“ 당장 오늘 점심도 뭐 먹을까.. 고민하시죠? 아침에 5분만 더 잘까? 무슨 옷을 입을까? 오늘 회의 때 내 의견을 얘기할까? 말까? 까지.
모든 순간순간이 선택의 연속이고, 이 선택은 내가 마음을 먹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ㅎㅎ”
그 선배의 얘기에 따르면 우리 얼굴 근육은 큰 근육만 2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근육들이 미세한 근육과 연결되면서 지을 수 있는 표정은 무려 5만 가지.
그래서 우리가 잔뜩 찌푸리고 있는 사람을 보면 ‘오만상을 짓고 있다’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오늘은 얼굴이 창백하네, 누렇게 떴네, 화색이 좋아, 볼이 발그레하네. 오늘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네’ 등등 얘기를 하는 것도 바로 이 마음먹기와 얼굴경영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흔히 수상(手相)보다 족상(足相), 족상보다 관상(觀相), 관상보다 심상(心相)이라고 하지요? 내가 어떤 마음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인상이 바뀌니, 한마디로 얼굴 경영은 곧 마음 경영이에요. 만일 내가 오늘 아침에 짜증 나는 일이 있었더라도, 내가 어떻게 그 상황에 대처하느냐에 따라 내 하루가 달라질 수 있지요. 내 마음만 잘 경영하면 무슨 일이든 잘 헤쳐나갈 수 있고, 또 이렇게 도를 닦다시피 하면 얼굴색도 맑아지면서 인상도 좋아지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운명으로 갈 수 있다는 얘깁니다. ”
그러면서 선배님은 덧붙였다.
“요즘은 좀 짜증 나는 일들이 생겨도 좋게 생각하려고 해요. 내 마음을 좋은 쪽으로.
그래서 많이 웃으려고 하다 보니, 안색이 환해졌나 봐요. 요즘 나보고 얼굴 좋아졌다는 사람들이 많네.. 하하하.”
휑한 뒷머리를 감추지 않고 모자를 벗으신 것도 아마 얼굴 경영 강의를 들으시면서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 것 아닐까?
마음먹기, 마음 선택.
그 다음 날 조찬 모임에서 살짝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모임의 한 사람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달라서, 서로 언짢은 기분을 갖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 모임에서 나오는 순간,
왠지 그 불쾌한 기분이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떠돌아다닐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 우연히 열어본 SNS를 통해 내 눈에 들어온 한 문장이 있었다.
‘오늘은 행복만이 나의 일이니까...’
맞다.
오늘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약속이 두 개나 잡혀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모임인데,, 이 일로 나의 소중한 하루를 망칠 수는 없지.
오전의 일은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 지금 고민하지 말자.
저녁에 집에 돌아가 시간을 좀 갖고, 그 사람 입장에서도 생각하면서 마음을 정리해 보자.
그래, 지금부터는 행복을 선택하는 거야.
내가 내 마음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내 마음을 선택한다는 사실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오랜만에 비가 오고 난 뒤라, 미세먼지로 뿌옇던 하늘이 오늘따라 너무 파랗고 예쁘다.
햇살도 빛난다. 공기도 상쾌하다.
난, 지금 이 순간, 행복을, 선택했다.
지금은 영어로 present, 현재이자 선물 아닌가.
마음을 좋게 바꾸기로 마음 먹으니 선물이 보인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고 일기장에 적어 놓은 글이 떠오른다.
-우리는 현재를 산다.
예전의 모든 일과 장소는 과거이며, 대부분 잊힌다.
우리 앞에 놓인 시간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