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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금 인 형

by 나땅콩





고요의 그림자와 한눈을 팔았을 때

풍랑의 가운데로 떠민 건 바람이었습니다

들짐승처럼 달려드는 안개

비집고 나갈 수 없는 통로 사이에 걸려든 것처럼

숨이 막혔습니다


누군가 끌어올려 갑자기 등을 두드려대자 토할듯한 울음이 터졌습니다

몸으로부터 작은 물방울들이 솟아나는 걸 보면서

세상이 빙빙 돌아가는 것처럼 어지러웠습니다

끝과 끝이 맞닿은 곳

나는 기진하여 실신하였습니다

새로운 방법으로 숨을 쉬는 세상이었습니다

보는 것은 점차로 위태롭지 않았고

보이는 것은 심연을 헤엄치고 올라오는 고래처럼

빨아들이고 남는 것을 뺃을 수도 있었습니다

다른 상황의 빠른 그림들을 이어 붙이는 지느러미를 갖는 일이었습니다


윽박지르던 폭군이 두려움이라는 것과

한 방향으로 달려드는 파도의 이빨이

포말의 허구라는 것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면서

나는 녹아내리지 않도록

숨을 참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누구라도 꺼려하는 습관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자꾸 목이 말라왔습니다

물속에서의 삶은 채워질 수 없는 기갈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수면으로 올라가 한참을 떠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출렁이지 않는 뭍의 생활을 동경하게 되었으며

슬픔이 정제된 순백의 결정을 만든다는 변방의 대장장이가 궁금해졌기에

갈매기와 연기를 뿜고 지나는 무수한 배들 사이 조각난 혼령들과 곧잘 어울려 다녔습니다

나는 난파된 물건들의 사연에 섞여 일부분으로 머무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빛나는 비늘을 가진 청새치와

대륙을 쉬지 않고 건널 수 있는 날개,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을

자맥질하는 자유로운 돌고래이기를

그 꿈이 나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름 한 점 없이 뜨거운 여름날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나는 가만히

염전에서 일하는 사내들의 건강한 등줄기 너머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하얗게 피우는 소금

만발하는 꽃밭이었습니다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나는 어디든지 내릴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시간과 공간보다 작거나 커지기도 해서

하늘 가장자리

가장 먼데를 드나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오래된 바람,

나는 바다의 눈동자이며 몸짓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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